brunch

스위스가 새벽 러너들에게 주는 선물

새벽은 공짜다.

by 에라토스





▐ 오랜만의 한국 방문, 그리고 스위스로의 귀환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치과 치료도 잘 받고, 맛있는 음식들을 실컷 먹으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스위스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빠르고 편리한 생활을 만끽하다가 다시 모든 걸 우리 가족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스위스로 돌아오면,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특히 스위스에 정착하던 초기에는 후유증이 상당했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적응하는 법을 익혔다. 어쩌면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며 준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잠시 스위스 물가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았기에, 오늘은 스위스에서 맛볼 수 있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 선물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 외곽으로 한 걸음, 세상이 열리는 순간


스위스의 마을은 조금만 외곽으로 나오면 높은 건물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을에서 조금만 떨어지면 산이 우뚝 솟고, 벌판이 펼쳐지며, 호수가 반짝인다.


그렇게 물과 산이 어우러진 이 풍경은 일출을 보려는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시야가 확 트인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냥 길을 따라 몇 km 걷거나 뛰다 보면 보물과 같은 곳이 저절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자가 정한 그 완벽한 지점은 새벽을 맞이할 이상적인 무대가 된다. 산이나 호수 근처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제의 피로가 먼 추억처럼 느껴진다.


▐ 새벽 러너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


물론 이 일출의 절경을 보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다. 새벽아침을 깨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물론 그 자연을 아름답게 잘 가꾸어 놓는 스위스라는 나라의 손길에 대한 감사가 빠지면 안 된다.


나는 새벽 러너다. 매일 같은 코스를 달려도, 그 길은 매번 새롭다. 산의 실루엣이 빛에 물들고, 호수의 물결이 구름을 비추며, 그 모든 게 그날만의 그림을 그려낸다. 어제의 구름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는데, 오늘은 날카로운 붓질처럼 선명하다.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한 햇살이 피부에 스며든다. 때로는 따뜻하게 포근히 안아주고, 때로는 뜨겁게 불꽃처럼 반겨준다. 그 온기는 피로를 녹이고, 하루를 시작할 힘을 불어넣는다. 자연이 주는 이 선물은, 스위스의 산악 지형과 호수가 만들어낸 독특한 마법이다.



그리고 이 선물은, 스위스의 비싼 물가 속에서 유일하게 '무한 리필'되는 사치(?)다.



▐ 새벽이 주는 동기부여, 사람들 속에서...


새벽 5시 30분, 이른 시간에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나온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길에서, 산에서, 호숫가에서 마주치는 그들과 'Bonjour?' 웃으며 인사를 할 때면 달리는 내 발걸음도 이내 가벼워진다.


그중에 특별히 나에게 큰 동기를 부여한 사건들이 몇 번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1. 호수 한가운데로 카누를 저어 나가는 커플


새벽, 그들은 이미 물 위에 떠서 일출을 기다린다. “대체 몇 시에 나온 걸까?” 그리고 오늘 이런 장면이 펼쳐질지 어떻게 알고 나왔을까? 이 날은 하나님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쓰셔서 구름을 그려주신 날이었다.


아래는 그날의 감동의 사진이다. 이 분들 덕분에 내년에는 꼭 카누사서 가족들과 저렇게 하리라 다짐했다.



2.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할아버지


내가 뛰어가는 반대편에서 아무리 적게 잡아도 70대 후반처럼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뛰어 오신다. 아주 천천히 뛰고 계셨지만 할아버지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나의 존경심이 극으로 솟구친다.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할아버지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3. 6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 부부의 새벽 강 수영


내가 새벽 러닝을 마치고 호수에 도착할 때에 그 부부는 이미 그 차가운 호숫가에서 수영을 마친 후, 돌아오고 계셨다. 그러고는 타월 하나 걸치고 서서 일출을 감상한다. 그들의 용기와 여유가, 새벽의 찬 기운을 따뜻하게 바꿔놓는다. 그분들 덕분에 나도 호수 수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4.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부모.


이제 갓 4개월쯤 된 아기일까? 발을 물에 담그며 장난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순수한 기쁨이, 새벽을 가족의 시간으로 만드는 마법을 보여준다. 나도 더 따뜻한 부모가 되기를 소망해 보았다.


이 만남들은 우연이지만, 매번 새벽을 나서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방식으로 새벽을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 일부가 된 기분이다. 이는 스위스의 다언어 공존처럼,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인사이트를 준다.



▐ 새벽의 마술, 삶의 리듬을 되찾다


기술이 모든 걸 가속화해도, 자연의 느린 리듬이 진짜 균형을 준다. 내일도 같은 시간, 길을 나서며 이 마법에 감사할 것이다. 스위스가 준 이 선물은, 어떤 바쁜 날도 잊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자연의 변화와 사람들의 꾸준함이 어우러진 마술 같은 시간이다.


(이 맛에 스위스의 어마어마한 월세를 ㅠㅠ 낸다.)







keyword
이전 07화스위스 의료 쇼크 - 5분의 가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