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타고 라파누이로.
[에세이 문제 / 아래 문장 괄호 채우기]
배수아, <바우키스의 말>중에서
... 어쩌면 나는 자라서 ( )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 ) 미래를 살게 되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안개와 같은 그 확신이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나를 ( )하게 만들었다. ( )이 내가 앞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집에 가고 싶은 오후 2시. 회사에서 에세이 단톡방의 알림을 받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문장의 빈칸을 나에게 적용해 채워 보기. 정답이 없는 문제는 늘 어렵다. 자라서 무엇이 되겠다는 상상은 꽤나 오래전 일이라 상상과 동시에 생각이 비워져 버렸다. 되고 싶은 것도 이젠 없고, 당장 떠나고 싶은 여행지도 없는데.. 애꿎은 볼펜만 딸깍거리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뜬금없게도 바탕화면이 눈에 들어왔고, 랜덤으로 바뀌는 오늘의 바탕화면은 자연경관이 멋진 풍경사진이다. 저곳으로 가볼까? 손끝으로 '이 사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아이콘을 눌러내면서 그곳으로 나를 떨어뜨렸다. 랜덤 하게 첫 번째 빈칸을 채우며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여행 목적은 문제의 괄호 채우기. 준비물은 노트북과 시간. 여행 비용이 청구되지 않는 대신 상상력을 지불해야 한다.
어쩌면 나는 자라서 (작고 외딴 라파누이의 건축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태평양 바다 위 작고 외딴 이스터 섬. 원주민들은 이곳을 라파누이(커다란 땅)이라 불렀었다고 한다. 교수생활도 지겨워졌고, 인간관계에서 지친 나를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피곤했던 탓인지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지체 없이 작은 배낭과 점심을 챙겨 탐방길에 올랐다. 머릿속엔 '어떤 조형물을 만들 것인가' 생각뿐이었지만, 걱정 없는 사람처럼 가볍게 움직여 보기로 한다. 길을 따라 걸으며 번번이 눈에 들어온 건 *모아이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가는 곳곳마다 마주쳤다. 이정표와 같은 모아이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어딜 가든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었는데 둘은 경쟁이라도 하듯 보다 더없이 깨끗하고 맑았다. 오르막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정오가 되었을 즈음 해발 500m인 섬 꼭대기에 도착했다. 배낭을 풀고 배를 채웠다. 푸른 들판의 야생화가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역시, 초록들판과 바닷길 사이를 가득 채우는 건 모아이다. 종일 석상을 보고 있자니 내가 석상이 된듯하다. 이곳과 어울릴만한 모아이를 만들고 싶어졌다.
어떠한 경우라도 나는 (스스로 포기하지도, 만족하지도 못하는) 미래를 살게 되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해가 바다에 떨어지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작업 대상을 정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하루. 생각한 것이 날아가 버릴까 싶어 곧장 책상에 앉아 펜을 잡았다. 어떤 재질로 만들지, 위치는 어디에 둘지, 모아이의 자세와 표정은 어떠해야 할지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을 술술 적혔음에도 결정하는 것은 쉬이 되지 않았다. 고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배낭을 챙겨 섬 곳곳을 걸어 다녔다. 거리가 먼 모아이 석상은 인간관계에서의 거리 같아 보였다. 그동안 인간관계의 거리를 가늠하며 살았고, 감당하지 못하게 가까워지면 불안해했었다. 그렇다고 너무 멀어져도 안 되는 문제였다. 나보다 몇 배는 큰 석상 앞에 서면 생각과 기분이 작아진다. 주변 사람들이 얕잡아보지 못하게 크게 만든 건 아닐까. 크기가 큰 모아이는 얼굴만 내놓고 몸은 땅에 묻혀있다. 쓰러지는 위험 때문 일 것이다. 너도 마냥 신세가 편하지는 않구나.
라파누이의 여름 바다는 늘 깨끗하고 맑지만은 않았다. 너울이 일기도 하고, 파도가 거세지는 날도 있었다. 한결같지 않구나. 변하는구나. 낮시간의 대부분은 섬을 걸어 다녔고 조용한 밤이 되면 책상과 작업실을 번갈아가며 작업에 몰두했다. 이곳에 도착한 날과 작업을 시작한 때는 수많은 별 중에 전갈자리가 빛나는 여름밤이었는데, 계획이 수정된 날도 밤이었고, 지금도 밤이다. 별빛아래 숙소 앞 모아이 석상은 단 하루도 같은 표정인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평온해 보이고 또 어느 날은 화가 잔뜩 나 보였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표정도 저와 같을까. 타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내가 한쪽으로 편협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걸까. 그렇게 석상의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뀌는 밤을 보냈지만, 좀처럼 계획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고민이 깊어지는 밤중에도 막연하게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결국 나는 포기하지 못할 거고, 작업을 완성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며 살게 될 거라는 것.
안개와 같은 그 확신이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걱정이 많고 머리가 아픈 밤은 잠이 올리 없다. 결국 작업을 포기하지도, 작업물에 만족하지도 못할 거라는 확신이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 확신은 안개와 같아서 손사래를 쳐봐도 걷어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은 시야를 흐리게 하고 체온을 떨어뜨렸다. 집중하지 못해서 불안했고, 불안해서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스스로 결코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끝이라도 보자. 끝내 작업을 포기하지 못한다며 손을 쉬지 않은 밤이 여러 날. 그렇게 라파누이의 기온이 떨어지고 쌍둥이자리가 밝게 빛나는 겨울밤을 맞이했다. 여름밤의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결과물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끝이 났다.
(시선을 두지 않고 눈을 감는 것)이 내가 앞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설치를 하루 앞둔 밤.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작업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불안한 생각과 라파누이의 밤을 맞바꾸며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감각을 단절시킬 필요가 있었다. 쉽게 차단할 수 있는 감각은 시각이다. 망치를 들고 중얼거렸다. "변하는 사람들과 나쁜 환경을 네가 보지 않았으면 해.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네가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를 돌보아줘. 그리고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모아이의 눈을 내려쳤다. '바다 가장 가까이에. 바다를 등지게 설치해 주세요' 짧은 메모를 남기고 작업실을 떠났다.
지이이잉- 뚜우- 시간여행이 끝났음을 알리는 복사기 소리다. 일상이 지루하고 인간관계에 지친 라파누이의 건축가는 모아이의 눈을 감기며 불안에서 벗어났을까? 그는 나만큼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만만치 않는 지독한 회피형의 건축가 임이 틀림없다. 나 역시 인간관계에 지쳐 있다. 사람을 잘 만나지 않지만 만난다면 최선을 다하는 편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사람 만나는걸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하고 꺼린다. 내가 정해둔 선을 상대가 넘을까 봐 노심초사하고, 너무 가까워져서 나를 잃어버릴까 불안하다. 지독한 회피. 그것은 나의 생존법이다.
과제를 제출하기 전, 채워진 괄호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작고 외딴 / 포기하지 않는, 만족하지 않는 / 불안함 / 눈을 감다. 괄호 밖은 고정되어 바꿀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괄호 사이'. 그 비워진 공간에 둔 단어들은 '내가 세상을 보는 프리즘'이었다. 한줄기의 빛이 선명해지는 밤. 프리즘으로 그 빛을 굴절시키면 원하는 방향으로 빛을 보낼 수 있고, 빛을 분산시키면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어떤 프리즘으로 어떤 빛이 나게 할 것인가. 그것은 '괄호 사이' 내가 어떤 것을 둘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거다. 관계문제도 프리즘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상황을 내가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달라질 테니. 가진 프리즘이 많다면 상황에 따라 현명한 대처가 가능하겠다. 어떠한 빛이라도 내가 원하는 빛으로 바꿀 수 있을 테니.
좋은 시간여행이었다. 스스로를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내 안에 이러한 상상력과 호기심이 있을 줄이야. 앞으로는 어떠한 상황에도 한발 물러나 긍정적인 프리즘으로 비춰보고 싶다. 그럼에도 안개와 같이 불안함이 생긴다면, 상상력을 동원해 안개를 떠오르게 하겠다. 안개와 구름은 지면에 붙어 있느냐, 떨어져 있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나의 상상력으로 안개는 필히 구름이 되며, 더 이상 앞으로 가는 길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모아이석상
모아이(Moái)는 태평양 이스터 섬에서 발견되는 석상으로, 거대한 바위를 쪼아 사람 얼굴처럼 가공한 것이다. 섬의 규모에 비하여 그 수가 많고 거대한 데다가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외지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상당수의 모아이는 몸체가 묻혀있는 형태이며 현재의 모아이는 거의 대부분 눈이 부서져 버렸다. 서기 1500년경, 외부에서 라파누이를 방문한 7명의 모험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7개의 모아이 석상을 제외하고는,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석상은 단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