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의 이야기
나는 쟤가 왜 이렇게 싫을까? 싶을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사회생활을 거듭하며 잘 들키지 않게 되었지만 이중적인 마음과 행동으로 번번이 혼란스럽다. 싫음의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무시하고 외면했다. 좋음을 표현하기도 부족한 시간 아닌가. 싫은 마음을 표현하고 오해를 풀면서 더 나은 관계가 될지도 모르지만, 꼭 그래야 하나 싶다. 그저 적당하게 지내는 게 좋다. 이런 관망적인 태도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워하는 마음을 켜켜이 쌓아둔 마음에 죄책감이 커진다면 속죄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누나, 근데 Y랑 무슨 일 있었어요? 누나 퇴사하던 날, 그 누나 엄청 울었어요. 자기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왜 마지막 인사 없이 가버리냐고요.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의 말을 토시하나 빠지지 않고 기억해 내는 건 여려 겹으로 쌓아둔 미워하는 마음 때문일 거다. 퇴사하면 끝이지. 들춰진 이야기가 불편했다. 주말아침 포근한 늦잠을 자는 중에 들춰진 이불처럼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퇴사 이유에 Y는 없으며, 회사가 진절머리나 그랬었나 보다며 얼버무렸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날, 전 직장 동료들의 SNS 연결을 끊었다. Y의 눈물소식에도 구태여 진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알게 되어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알게 된다고 해도 바뀌는 것 없지만, 그래. 바뀌는 것 없기에.
글쓰기 모임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기로 했고 정해진 영화는 '어톤먼트'*. 주인공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삶과 소설로 속죄하는 인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던 일들을 잘 잊어가고 있었는데 속죄라는 단어가 죄책감을 데리고 그 일을 떠올리게 했다. 브라이오니가 소설로 속죄*했다면, 글쓰기로 해보겠다며 드립백 커피 한잔과 크루아상을 챙겨 노트북 앞에 앉았다. 와앙- 빵을 한입에 베어 먹으려다 문득 빵의 내부가 궁금해졌다. 마음을 털어놓기 전에 크루아상의 속을 먼저 털어보는 건 어떤가. 구워진 빵의 표면은 비교적 단단해 보여도 속은 분명 비었을 거다. 요즘은 지그시 눌러 구워내어 크룽지(크루아상+누룽지)로 먹는 게 유행이라서. 그 속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호기심 가득한 손으로 겉면을 들추니 낙엽 소리를 내며 힘없이 부서졌다. 체면을 생각해 털어먹지 못할 부스러기가 한가득 떨어져 나왔고. 울퉁불퉁하게 겹겹이 쌓인 뽀얀 반죽이 훤히 보였다.
Y가 내 퇴사에 작은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공공연하게 털어놓을 정도는 못된다. 나는 단지, 그녀를 싫어했을 뿐이다. 마지막인사를 하지 않았던 건 싫은 마음을 조금 표현하고 싶었던 걸지도.
미워하는 마음. 직급 높은 사람에게 아부하는 모습이 미웠다. 함께 욕하고 싫어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그토록 생글생글 웃을 수 있는지. 상여금 받던 날에 구내식당 바닥에서 임원에게 큰절하는 행동은 가히 충격적 이였다. 다수의 직원들은 한바탕 웃었지만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적당히가 없는 사람인가.. 그런 모습이 미워 보였다.
기피하는 마음. 그녀의 큰 목소리에 덩달아 나까지 주위 시선을 받던 게 싫었다. 서너 발 물러나서 걷거나 그녀와 먼 테이블에 찾아 앉고는 했다. 남들의 볼멘소리에도 구김살 없이 그녀는 늘 시끄러웠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그녀의 말과 행동이 나의 것이 될까 봐 피해 다녔다.
원망하는 마음. 일도 못하고 애가 어딘가 어둡다며 대놓고 싫어라 하던 동생을 기억하려나. 은근히 따돌리는걸 그 애도 느꼈다던데.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했을 텐데. 그 애를 배제하는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몇 마디로 설득되지 않던 따돌림에 나 역시 혼자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로부터 점차 멀어지도록 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Y의 승진. 승진 축하한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성이 다소 떨어진 어조와 마음이었다. 실은 조금 부러웠고 많이 실망했다. 실수 투성이인 그녀가 승진이라니. 6년 차 사원도 승진 못하는데 역시 결혼하고 볼일인가. Y의 승진과 동시에 회사는 직급과 연차에 따른 호봉제로 바뀌었고. 겸사겸사 퇴사했다.
지난날의 일과 크루아상은 닮았다. 여러 부정적인 마음은 발효된 반죽이 되고 싫어하는 대상은 버터다. 그 둘을 함께 켜켜이 쌓아 여러 번 계속해서 굴리고 접는다. 처음 몇 번은 어렵겠지만 한두 번 접어내면 더 쉽고 빠르게 또 다른 미워하는 마음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는 반죽을 얇게 늘려 돌돌 말아내어 구워내면 완성이다. 들추면 부서지고 부서지면 다시 담아내기 힘든 크루아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비워진 접시에 빵을 더 남아내고는 적어 내린 글을 여러 번 다시금 읽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누군가 이런 문장을 썼다. 슬픔은 설명하려 할수록 반드시 보잘것 없어졌다.** 그 문장처럼, 싫은 마음을 설명한 단락마다 참으로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한때에는 함께 웃고 떠들던 동생이. 계절 따라 꽃과 단풍구경을 함께한 직장동료가.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결혼사진을 골라주던 사람이. 퇴사하는 날, 인사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면. 나는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눈물을 상상해 본다. 배신감, 상실감, 후회, 미움, 원망,,,, 그 의미가 무엇이든지 나는 잘못했다. 그녀에게 직장동료 때문에 눈물 흘리는 날이 앞으로 며칠이나 또 있을까. 관계를 끊었지만, 쌓아둔 모든 마음을 덮었지만, 죄책감은 계속 날 따라다니고 있었다.
오랜만에 메신저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프로필 사진이 여전히 스위스 배경인걸 보면, 새로운 여행은 없었나 보다. 전해지는 소식으로는 피부색까지 빼닮은 아들을 낳았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고 한다. 시끄럽고 요란한 사람. '언니 그만'이란 말에도 허허허 웃어 보이는 사람. 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마주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일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솔직하게 말해주겠다.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었다고. 사내정치가 심한 회사에서 힘들었었다고. 아부하는 언니를 미워했지만 지금은 그 또한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시끄러운 언니를 피했었지만 개인의 성향일 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언니를 원망했지만 언니만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언니를 질투했지만 그때에는 내가 어렸다고...
-브라이오니는 직접 친언니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어요. 그걸 속죄라고 볼 수 있을까요?
'어톤먼트'의 감상평을 나누며 내가 한 말이다. 브라이오니의 속죄가 일평생 계속된 이유는 직접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이내 찾아갈 수 없는 상황(언니의 죽음)이 되었기 때문일까. 나 역시 시간이 흐른 후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 용서를 구하진 못하겠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한 마음을 오랜 시간 가지고 있겠다. 크루아상을 마주할 때마다 언니를 떠올려 반성하겠다. 앞으로 또 다른 Y를 만들지 않을 것. 그렇게 속죄하겠다.
*영화 「ATONEMENT」 (2008)
*속죄 :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앰.
**최연우, 「영원히 걷는 이야기」 (2025) 중에, <아침달 워크숍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