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휴직의 이유.
한 달, 혹은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비자발적 휴직기를 보내게 되었어요. 늘 상상했지만 현실이 되니 당황스럽네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90%의 월급. 그것으로 휴직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글을 매일 연재하며 찾으려고요. 생각이 걷는 길을 따라 걸어가 보겠습니다. 휴직 끝에 복직, 이직, 퇴사 중 무엇을 하게 될까요? 노트북을 메고 어디든 떠나기 좋은. 4월입니다.
나란 사람은 상상 속에서도 일하지 않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수능이 끝났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아르바이트를 쉬어 본 적이 없을뿐더러 다음 직장이나 목표를 정하지 않고 퇴사한 적도 없다. 일하는 가장 큰 목적은 언제나 돈이지만, 돈이 필요했다기보다 돈을 벌지 않는 시간이 아까웠달까. 여러 가지 이유로 쉬고 싶은 마음이 들면 다음 직장을 알아봤다. 그렇게 십여 년을 나름 바쁘게 살았다.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어떠한 일이든 계속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올해의 4월엔 비자발적으로 일하는 삶에서 내려와 한 달 동안 서성여야만 한다.
'비자발적 휴직' 인터넷 검색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란 게 웃기다. 비자발적 뒤에는 보통 퇴사가 대부분. 그런데 퇴사 말고 휴직이라니. 그것도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제안한 휴직. 나의 휴직의 이유는 온전히 회사에 있었다. 경영악화가 가장 큰 이유. 직설적으로는 월급을 줄 돈이 없다는 뜻이었을 터. 최근 육 개월간 월급이 5일, 3일 그러다 한 달도 밀렸었다. 분명한 퇴사의 시그널임을 알았지만 퇴사 혹은 이직하지 않았다. 올 4월 말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퇴사한 직장인처럼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맞다. 조용한 퇴사자.
청첩장을 책상 아래에 넣어둔 채로 한 달이 지났다. 월급이 밀려서,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오늘은 얼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등등.. 여러 이유로 미뤄오다 결국 경영악화로 인한 휴직 소식과 함께 더욱 깊게 밀어 넣어뒀다. 그렇게 또 며칠을 미루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둔, 휴직이 결정된 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청첩장을 나눠주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는 분명 봄인데 몇 개월 만에 마주한 사장님의 얼굴은 옆구리 시리고 얼굴 쩍쩍 갈라지는 겨울이었다. 어색한 눈 맞춤과 감사인사를 나누고는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휴직의 이유가 유쾌하지 않아서일까. 돈을 벌지 않는 시간이 아까워서일까. 한 달을 쉬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썩 유쾌하지 못하다. 그래도 문득문득 한 달의 쉼이 설레기도 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면 행복하다. 어쩌면 내 생에 두 번 오지 못할 기회란 생각에, 집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진 못할 것 같다. 컴퓨터 메모장을 켜고 가고 싶은 곳을 적어 내렸다.
경주 고집베이커리 (브런치) 일 off
경주 건천다방 (흑임자라테) 일 off
경주 화랑모티브(클래식와플) 일월 off
경주 데네브 (깜빠뉴) 화수 off
영천 카페온당(서원라테) 월화 off
울산 서점 그럼에도
대구 사소한 책방
부산 서점 마곤 달 애가
"두 시간 삼십 분 남았습니다"
휴직의 시작을 알리는 차장님의 목소리. 휴직에 필요한 짐부터 챙겨야겠다. 칫솔, 매일 먹는 약과 비타민,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텀블러. 내일부터는 꽃샘추위가 가시고 따뜻한 날의 연속이 될 거라 기대한다. 노트북을 메고 어디는 떠나기 좋은 4월. 그래 한번 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