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않게 보내는 시간.

by 경주ist

하암-

벌어진 입이 점차 커지고 귀아래턱과 연결된 근육이 늘어난다. 호흡을 마셨다가 멈추기. 일. 이. 삼. 하암-- 그렇게 한바탕 하품을 하고 나면 눈아래 눈물이 그렁그렁. 하품이 많이 나오는 걸 보니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점차 풀어지나 보다.


어제와 같이 알람 없이 눈을 뜨고 (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남) 9시 이전인 시간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남편을 흔들어 깨우다 서재에 들어가 필사책을 폈다. 필사는 이제 겨우 2일 차이지만 그 매력을 벌써 알아가고 있다. 단순히 글을 베껴 쓰는 것이 아니고 눈과 목소리로 읽어도 알지 못했던, 글의 맛과 내용을 알아가는 과정이더라. 오늘의 필사* 를 써내려 가며 첫 문장에서 가을이 왜 슬픈 가을이었는지. 손바닥에 강물이 어떤 의미인지. 셀 수 없는 느낌표가 생기며 글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보냈다. 소요시간 삼십 분. 필사하는 시간을 복직 후에도 계속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한 페이지를 채우고서는. 냉장고에 콜드브루 커피를 눈대중으로 대강 타서 다시 책상에 앉았다. 경주 로컬 잡지 '로플'과 '휴식 찾기의 기쁨' 도서를 몇 장 읽고.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도 조금 읽었다. 집이 아니라면 이런 병렬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건가? 원하는 책을 읽고 싶은 만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싶다. '오늘도 나가야지' 마음먹고는 식기세척기 작동시간을 예약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읍내 아닌 시내로 향했다. 경주의 벚꽃나무가 95% 피었다는 것을 관광객들도 아는지. 경주의 4월 초 시내 도로는 차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용하는 무료 주차장 역시 가득 찬 건 아주 슬픈 일이다. 주차를 한 뒤 가방을 들춰매고 길을 따라 걸었다. 예전의 나라면 걷지 않았을 테지만. 아니 집에서도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 뒤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글감을 찾아 떠난달까-


휴직기를 가지고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그리고 글을 쓰며 이전의 나와 다르게 행동하면서. 일상에서 낯선 경험을 많이 하고자 한다. 파란 하늘과 고분 사이로 길을 따라 걸었다. 충분한 햇살, 자연의 소리만 가득한 이곳.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노란 나비에 시선을 뺏겼다. 나비를 눈으로 좇으니 또 다른 나비를 만나게 되었고. 둘, 셋, 그렇게 나비와 함께 길을 따라 자연을 실컷 봤다. 경주의 고분을 유심히 쳐다보고. 길이 아닌 길로 걷기도 했다.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어느 운전자의 반가운 호의를 느끼면서 걸었다. 경주 봉황대에 들어서며 화덕피자 향에 코를 한껏 열었다가 커피 향에 집중력을 잃고, 봉황대의 사람들을 관찰하다 목적지에 도착.


남편이 늘 상주해 있는 매장의 문을 열었다. 걸어오느라 힘들었다는 푸념과 함께 그의 옷매무새와 관련된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내고는 한편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지나가는 길에 들리는 그의 지인들. 간혹 매장을 구경하는 손님들. 커피를 사들고 놀러 온 반가운 얼굴. 그렇게 이곳에 머무르며 노르스름 해지는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글을 쓰고 커피를 마셨다. 하암-. 커피로도 막을 수 없는 하품을 내뱉으며 그렇게 또 하루를 서성이고 있다.


5시. 회사에 있었으면 퇴근을 준비했을 시간이네. 귀가해야지.



*오늘의 필사 : 윤동주 시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