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데뷔전
지난주 훈련이 끝나고 아이는 왼쪽 발뒤꿈치가 아프다고 했다. 평소 나는 아이 아픈 것에는 유독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사고가 난 응급 상황이 아니고서는 1~2시간 지켜보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거의 옳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도 역시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고 일찍 재우기 급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깊은 잠도 통하지 않는 것인지,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고 염증이 생긴 것 같다는 남편의 생각에 집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진단명은 sever disease. 우리말로 흔히 시버병, 종골 골단염이라고 한다. 성장판 부위에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가해지면서 염증이 발생되는 질환이라고. 얼음찜질을 하면서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휴식을 취할 것. 참기 힘들 정도로 많이 아프면 부루펜과 같은 진통제를 복용할 것. 의사 선생님께 리틀야구 선수생활을 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아마도 딱딱한 야구화가 원인일 수 있다고, 평소에도 쿠션감이 좋은 신발을 신는 게 좋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아픈 와중에도 훈련을 계속하면 낫질 않고, 심할 경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말씀을 전하셨다.
병원을 나서며 휴... 이정도로 다행이다 싶은 엄마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의 표정이 심상찮다. 그 좋은 야구를 하루라도 못할 걸 생각하니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내심 잘됐다 생각했다.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부상으로 인해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보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좋아도 무리하게 훈련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평소에도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 더 큰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기본 스트레칭을 빼먹지 않고 챙기는 자세 등 이번처럼 아주 심각한 부상이 아닌 상황으로 야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신경 쓰는 기회가 되었음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프로 선수들이 프로가 되기까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관리를 했을지 조금 헤아려보는 기회 말이다. 그저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편한 그들의 이름 석자로 끝낼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들의 실력 뒤의 보이지 않은 관리빨을 아이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저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잡고'만 하는 게 아니라.
4~5일 휴식을 취하고 토요일 훈련을 쉬었더니 일요일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엄마, 오늘은 진짜 멀쩡해요, 이것 보세요. 야구 훈련 갈 수 있겠어요!"
일요일 훈련은 연습경기라 구경하는 셈 치고 참석했다. 아이는 벤치에 앉아 동료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뒤꿈치가 좋지 않음에도 훈련에 참석한 아이가 안쓰러웠는지 코치님은 경기 마지막 이닝에 아이를 투수로 등판시켰다.
오 마이갓, 부상 덕분에 투수 데뷔전이라니!!
그렇게 엉겁결에 아이는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올랐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아이는 좋은 경험을 한 듯했다. 친구들이, 동생들이, 형들이 투수 포지션에 섰을 때의 느낌이 어땠을지를, 제구가 안되었을 때의 기분을, 안타를 맞았을 때의 아쉬움을 몸소 느꼈다고 했다. 빨리 나아서 꼭 한번 제대로 올라가 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게 된 의외의 날이었다. 코치님은 이것 또한 투수 데뷔전이라고 아이가 던진 공을 선물로 챙겨주셨다.
결과가 어찌됐든 투수를 맛본 것만으로도 최고의 날이었다. 그런데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또다시 통증 호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다 낫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 가는 게 아니었는데!!!'
마음속으로 수천번을 되내었지만 할 수 없었다.
빨리 낫게 해주려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게 했건만, 부상으로 인한 마인드컨트롤은 엄마만의 생각이었고 기대였을 뿐.
아들아, 얼음찜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