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돼지국밥
부산역에는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역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행객들은 자신과 닮은 여행가방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신나 보인다. 활기가 넘치고 설레어 보인다.
영할아버지는 그들처럼 들뜬 모습은 아니지만, 점잖은 얼굴 뒤로는 설레고 있다. 두근두근.
할아버지는 기차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면 딱이다. 미리 점심시간까지 생각하고 예매했었다. 마음 같아서는 기차 안에서 대충 먹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면 좋겠지만, 어차피 일찍 도착해도 모두들 출근하고 없기에 천천히 즐기면서 가기로 했다.
오늘의 점심은 국밥이다. 국밥은 매일 먹어도, 매 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수제비는 싫어도 국밥은 좋아한다.
⸻
드르륵―
사람들의 손때가 많이 탄 오래된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국밥집 주인이 말했다.
“뭐 드릴까?”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그녀만의 인사 방법인가 보다.
“돼지국밥 하나 주세요.”
“여기 돼지 하나!”
할아버지는 어디에 앉을까 조금 둘러보았다.
“시원한 데 앉아요, 오늘 너무 덥네.”
날이 더워서 그런지 국밥을 먹으러 온 손님이 적어 자리가 여유가 있었다. 에어컨을 얼마나 세게 틀었는지, 여름인지 계절을 까먹을 정도다. 할아버지는 문에 가까운 구석진 곳으로 갔다. 메고 있던 배낭을 벗어 옆 의자에 잘 놓고, 모자를 벗어 배낭 위에 무심하게 툭 올려두었다.
⸻
서빙하는 어린 친구가 새우젓과 다대기장이 담긴 양념장 그릇, 어슷 썬 무 깍두기, 배추김치, 정갈하게 말아놓은 소면 한 덩어리, 생부추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수저는 여기 서랍에 있어요.”
간신히 들리는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안내한다. 그 후, 국밥집 주인이 능숙하게 국밥 뚝배기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 물도 안 갖다 드렸네. 너는 참~.”
“내가 금방 갔다 드릴게. 잡숴요~.”
하얀 물수건을 뜯어 손을 닦고,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냈다. 국밥그릇에 담긴 국물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아직도 끓고 있다. 뽀얀 국물과 향이 꽤 괜찮다.
일단 한 숟갈 떠서 ‘후후’ 불어 한입에 넣는다. 가루 국밥 국물이 아니다.
영할아버지 국밥 인생 n년차, 이 정도 구별은 일도 아니다. 이 집 제법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우젓 약간과 무 깍두기 국물을 국밥에 적당히 부어 색깔을 낸다. 생부추는 한가득 넣어 숨을 죽인다. 국물을 또 한 숟갈 떠먹는다.
‘됐다.’
⸻
밥공기 뚜껑을 열었더니, 에어컨 바람 덕분인지 하얀 김이 모락 피어오른다. 하얀 쌀밥은 통통하게 윤기가 촤르르 흐르며 뽐내고 있었다. 밥공기의 밥 한 그릇을 뚝딱 국밥 국물에 담가 숟가락으로 슥슥 말았다. 그리고는 한 숟갈 떠서 입안에 한가득 넣었다.
고기 국물과 젓갈의 감칠맛.
통통한 밥알들은 국물에 촉촉하게 젖어 그 맛의 깊이를 더 오래 머물게 한다.
뜨겁다.
‘하아.’
할아버지는 입을 살짝 벌려 한김을 밖으로 내보내고, 빨간 김치를 한 젓가락 집어 입안에 넣어 뜨거움을 달랬다. 부산 사나이에게 이 정도 뜨거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부산역까지 왔던 피로는 이 한 끼로 녹아버린다.
⸻
무심한 듯 듬성듬성 잘라진 돼지고기 몇 점을 국밥 국물에 건져 시원한 무김치와 함께 한입 베어문다. 고기가 연하게 잘 익었다. 돼지 잡내도 없다. 정갈하게 잘 말려 있는 소면은 쳐다도 안 보는 할아버지다. 면은 별로다.
건더기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영할아버지는 능숙하게 뚝배기 그릇을 받침대에 비스듬하게 걸쳐준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국물을 싹싹 비운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린 할아버지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훔쳐낸다. 물 한 잔 마시고 입을 헹군다. 가방을 다시 메고 모자를 눌러쓴다.
할아버지는 카운터 앞으로 가서 가만히 서 있었다. 국밥 주인은 다른 손님을 대접하느라 미처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주인을 부를 법도 한데 그냥 기다리고 있다.
“맛있게 드셨어요? 만 원만 주이소.”
“네, 잘 먹었어요.”
할아버지는 카드를 내밀었다.
삑―
“영수증 드릴까예?”
“버려주세요.”
할아버지는 카드를 받고 이쑤시개 하나를 뽑아 국밥집을 나섰다. 배가 든든하다. 크게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허리춤을 정리한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영할아버지는 부산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와 함께 시작될 오늘의 설렘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