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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랑 Nov 17. 2024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갱년기

향 맡고 갈래?

호르몬이 이렇게나 귀하다고?

갱년기를 지내오면서,

어떤 하루는 눈을 뜨기가 무서울 만큼 온몸의 통증이 엄습했고,

어떤 하루는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의 어깨 통증이 사슬처럼 내 몸을 얽매었고,

어떤 하루는 내 몸 안 어딘가에 펄펄 끓는 마그마가 있는건가 싶을 만큼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기를 반복했고,

어떤 하루는 싸늘한 얼음이 온몸을 감싸는 통에 온열기를  사야 하나 싶어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날락거렸다.


내과를 찾았고,

정형외과를 찾았고,

산부인과를 찾았고,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병원 투어를 해도 그때뿐이었고 그래도 또 널부러지기는 싫어서 오기를 부리며 나를 재촉했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단계라며 호르몬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아서, 이 모든 것이 단지 그 호르몬의 부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걸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호르몬이 부족해서, 나의 마음도 힘을 잃고,그동안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를 돌보지 못해서 그래서 아픈 거라니. 지금의 나는 20년 전의 나라는 말을 들으며 그때의 나에게 나는 너무 매정했나 보다 싶어 그냥 눈물이 흐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힘을 내야겠다 싶어 으쌰쌰 억척을 부리는 날도 있었다. 사춘기보다 혹독한 갱년기가 오는 건가 싶어 지래 겁이 났다. 우울의 바다에서 익사할까 두려웠다. 그러다 어릴 적 2층 거실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던 까만 수동 싱거 미싱이 떠올랐다. 딸 넷을 줄줄이 낳고 마음 고생, 몸 고생 심했던 엄마.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얻었다는 아들을 낳은 후에도 엄마는 힘이 들었나? 그래서 두 발을 페달에 올리고 돌돌돌 소리를 내며  딸 넷에게 원피스를 만들어 입히며 힘을 얻었나? 말이 트이고 코 찔찔대던 시절부터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악을 쓰며 고집피웠다던 나는 브라더 미싱을 샀다.  

전동 미싱에는 아래로 위로 발을 저어가며 미싱질의 박자를 맞추어주는 넓적한 페달은 없다. 가벼이 발을 갖대 대기만 하면 부드럽고 빠르게 바늘이 움직인다. 엄마의 수동 싱거 미싱이 그리울건 또 뭐람. 여러겹의 천을 자르고 덧대어 아이의 천진난만 재기발랄한 알록달록 그림을 인형으로 숨을 불어넣는 내가 대견했다. 아이의 그림은 유치원의 큰 형님반에 다다르자 인형으로 담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니 더 이상 내가 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 뭔가 해보겠다며 호언 장담하며 장만했던 미싱을 썩힐 수는 없지 싶어 원피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막둥이는 놀이터에서 여기 저기 뛰어 노느라 완성된 원피스는 완성된 날 하루 핏팅 모델까지만 허락했다. 아이의 성장 에너지를 따라 잡지 못한 나는 아이의 원피스 만들기는 2벌만에 끝을 내고 원피스보다는 사이즈가 작은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혔다. 아이는 엄마가 만든 옷 자부심을 입고 놀이터에, 학교에서 눈 마주치는 누구에게나 자랑을 했다. 삐뚤빼뚤 독학으로 만들어 낸 옷 실력이 밑천을 드러낼 때 쯤 다행히 아이가 인형 옷을 의뢰해왔다. 재빨리 아이의 옷에서 인형의 옷으로 선회했다. 손바닥만한 인형 옷은 아기자기 귀여웠다. 귀여웠다고 쉬운 것은 아니었는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나도 힘 드는 줄 몰랐다. 그러나 인형 옷 의뢰는 태권도장을 다니기 기시작한 시점부터 뚝 끊겼다. 나의 필요로 시작한 일이 아니니 비를 기다리며 갈라져가는 논두렁 바닥마냥 의뢰인의 비를 기다려야했는데 도무지 비를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브라더 미싱은 드레스 룸 한 구석에 정리되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인형의 눈과 코와 입술을 이쁘게 만들고 싶다며 독학하느라 사모은 바늘과 실이 있으니 프랑스 자수에 대한 책과 씨름하며 꽃 그림 자수를 했다. 그러다 노안이 찾아왔다. 눈이 침침하고 뻑뻑해서 찾아간 안과에서 노안 진단을 받고 놀라는 나에게 “노안은 25살부터 진행되었던 거예요” 라며 쿨하게 안약을 넣어주시던 의사 선생님, 저 그날 상처 쪼매 받았습니다요.

내 방이 없는 내 집에서 아이와 남편이 잠 들면 고요해지는 주방의 끝이자 거실의 시작인 식탁 한 구석에서 나는 밤을 새우며 나를 찾으러 헤매이던 여행을 마쳤다.

‘음,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가보네’


그러다 에센셜 오일을 만났다.

땅의 선물.

자연의 선물.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향. 그 향을 오일로 추출해 내어 만들어진 에센셜 오일. 한 방울 손바닥에 떨어뜨려 향을 맡으며 나의 얕은 숨이 깊은숨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다.


옛날 그 옛날, 1000년도 전에 페르시아의학자 아비세나의 발명품으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할 수 있는 도구가 만들어졌다는데 아직도! 그때의 그 방법 수증기 증류법으로 오일을 추출한다는 글을 읽으며, 소줏고리를 이용해서 전통 소주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영상을 떠올렸다. 식물의 잎, 가지, 꽃잎, 뿌리, 껍질, 수지 등을 이용해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한다고 하니, 한약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한약이 식물의 잎, 가지, 꽃잎, 뿌리, 껍질 등을 잘 말려서 물을 넣고 달여 식물의 자연 치유적인 성분을 뽑아내어 마시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니 에센셜 오일도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에센셜 오일이 나에게 왔다.

혹하면 훅 당겨지는 나는 에센셜 오일에 깊이 빠져들었다.

갱년기인 나에게 부려보는 사치 아니 의무.

찬 바람 불어 건조해지는 요즘 냉압착 호호바 오일에 로즈 터치, 자스민 터치, 네롤리 터치, 로즈 제라늄 방울 방울 떨어뜨려 바디오일을 만든다. 귀한 꽃 오일들은 나에게도 귀한 호르몬을 북돋아 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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