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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빛 상흔, 아이스크림

작은 막대기에 담긴 계절

by 아르망

작은 손안에 있던 막대 아이스크림,

그것은 어린 내가 쥘 수 있었던

가장 찬란하고 반짝이는 여름의 조각이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그때,

손에서는 바닐라빛 행복이

작지만 당당하게 서있었지요.


그 차갑도록 선명한 달콤함이 혀끝에 스며드는 순간,

나의 여름은 비로소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더 깊숙이 베어 물수록,

더 진하게 퍼지는 단맛의 시간들은

영원히 얼려두고만 싶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애틋하게 아낀들

뜨거운 태양 아래선

늘 아이스크림이 먼저 녹아내렸고,

그럴 때면 마음도 함께 녹는 것 같았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은

단지 달콤한 물만이 아니었지요.


계속 붙잡을 수 없었,

그 여름의 찬란했던 순간들도

함께 녹아내렸습니다.


눈부시게 달콤했지만

잠깐 손에 쥐었다가 사라지는 인생처럼,

결국 손에 남은 건 텅 빈 막대기 하나뿐.


뜨거웠던 유년의 태양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처럼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어 버렸고,

그날의 끈적임은 아직도

손과 마음에 상흔처럼 남아 있습니다.


아, 그 작디작은 막대기에 얼마나

많은 여름이 묻어있었는지요.


마치 기억의 강을 건너는 나룻배의 조각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로 가는 짧은 나무다리 같기도 한,

그 막대기.


저 둥근 끝을 떠올리면,

혀 끝에도 그날의 그리움이

여름이 되어 내려앉습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

가장 아련한 그리움으로 완성되는 계절.


처음으로 '끝'이라는 것을

알려준 계절, 여름.


나는 오늘도

그 여름날의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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