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같은, 재즈같은 삶
싱크대 접시들은 하루의 시간처럼
가득 쌓여 있는데
손끝에 거품들은 수세미 그물 사이를
요리 저리 빠져나가더니
한숨처럼 쏟아져내렸습니다.
이에 질세라 피아노 건반처럼
힘차게 누르니
흥에 겨워진 거품이 트럼펫처럼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이윽고 은은한 재즈의 리듬이
접시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고,
삶의 얼룩들이
하얀 거품 아래
고요히 투명해집니다.
그릇과 그릇이 부딪칠 때
찰랑이는 그 소리는
색소폰의 맑고 경쾌한 선율처럼
부엌 가득 퍼지고,
싱크대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오래된 도시 빗속 골목을 적시는
재즈 클럽의 연주가 되어,
멋진 시계탑 아래서
약속한 연인을 기다리며 듣는
좋은 빗소리처럼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습니다.
한 음, 한 음
오선지 위 음표 같은 수저들이 지나가고,
마지막 쉼표 같은 아기 숟가락의
경쾌한 멜로디는
물방울 같은 박자를 손끝에 새깁니다.
재즈의 향연을 즐기는 사이,
그릇에 스며든 음식의 향기는 사라지고
접시는 태초의 빛깔처럼
하얗게 반짝이며 돌아왔습니다.
그 빛의 부스러기들은 기쁨이 되어
싱크대 이곳저곳에 시상식처럼 쏟아집니다.
세상 모든 근심도
이 작은 리듬 속에
거품과 함께 사라지고—
남은 건 깨끗이 빛나는 접시와
잔잔하게 남아 귓가에 울리는,
순수한 재즈.
아,
삶도 이렇게 설거지와 재즈처럼
투명하게 하루를 닦아내며
흘러가는 노래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