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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28편)

우리가 지켜낸 것들

by 아르망

1장: 불타버린 숲, 마지막 희망의 나무


마치 거대한 무덤 같이 변한 숲.

숨 막히는 열기와 역한 독기의 장막 아래,

바르크와 벨라는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었습니다.


화마가 남긴 흉터 위로 카르의 군대가

쏟아부은 독액과 기름은

대지의 마지막 숨통까지 틀어막은 듯했고,


생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토양은

시간이 흘러도 치유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바르크의 어깨는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그의 눈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장 옅게 드리운 곳을 찾아 끈질기게 헤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계곡의 바위틈,

오염을 기적처럼 피한 작은 샘터와

그 곁에 선 세 그루의 어린 나무를 발견했지요.


벨라의 숨이 멎는 것만 같았습니다.

별처럼 다섯 갈래로 뻗은 잎사귀.

그것은 숲의 모든 이들이 기억하는,

마을 입구를 지키던 가장 오래되고 거대했던

'무쇠뿌리 참나무'의 흔적이었습니다.


카르가 숲을 불태울 때 가장 먼저 쓰러뜨렸던,

모두의 추억이 깃든 바로 그 나무.


"바르크.. 이건..

무쇠뿌리 참나무의 아이들이야!!

그 거대한 나무가..

마지막 힘을 다해 남긴 씨앗.."


그것은 단순한 묘목이 아니었습니다.

파괴된 고향의 역사이자,

모두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의 뿌리였지요.


잿더미 속에서 기어코 자라난,

숲이 남긴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2장: 점점 다가오는 위협


벨라는 샘터 주변의 흙을 살피다,

새하얗게 굳은 소금 결정 아래에서

끈적이는 악몽의 그림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럴 수가.. 기름이 지하수맥을 타고

이쪽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어.

지금은 괜찮지만, 비라도 내리면..

이 샘터는 하룻밤 만에 기름 구덩이로 변할 거야!"


그리고, 곧이어 바르크가 주변을 살피다

근처의 언덕 위에서

선명한 군화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발자국이 아닌,

정찰과 수색을 위한 체계적인 대형의 흔적.

그의 얼굴이 단단하게 굳어졌습니다.


"순찰대야!!"


바르크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습니다.


"살아남은 생명의 흔적을 찾아 뿌리 뽑으려는

카르의 '청소부'들이지.

아직 우릴 발견하진 못했지만,

숲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게 분명해."


시간의 칼날과 적의 창끝이,

그들의 마음을 동시에 조여 오고 있었습니다.


3장: 시간과의 싸움, 숨 막히는 사투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숲 저편에서는 순찰대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바르크는 기름이 흘러드는 곳에

필사적으로 도랑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어깨로 바위를 밀어내고,

맨손으로 오염된 흙을 파헤쳤습니다.

바르크는 힘든 내색도 없이,

묵묵히 희망의 물길을 터 나갔습니다.


그 사이 벨라는

가장 깊숙한 바위틈으로 묘목을 옮겨 심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돌보듯,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흙의 기름을 닦아내고 약초 잎으로

독성을 중화시켰습니다.

마지막 희망의 뿌리가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도록 사력을 다했습니다.


"바르크! 거의 다 됐어!"


벨라가 마지막 묘목을 옮겨 심고 외치는 순간,

하늘에서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숲 입구에서 카르 순찰대의 외침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저기! 자경단 놈들이다!"



4장: 바르크의 선택, 그리고..


순찰대는 모두 여섯 명.

하지만 단순한 정찰병이 아닌,

카르가 숲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파견한 '말살 부대'였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길고 묵직한 작살창과

무게추가 달린 강철 그물이 번뜩였습니다.


교활한 대장 족제비는 바르크와 벨라,

그리고 그들이 지키려는 작은 나무의 가치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하! 이런 잿더미 속에서

저런 걸 지키고 있었나?"


대장이 비열하게 웃으며 명령했습니다.


"저 멧돼지는 나중에 상대한다.

먼저 저 고슴도치와 나무들부터 처리해라!

저들의 희망을 먼저 짓밟아 주는 거다!"


그 순간, 바르크의 눈이 핏빛 분노로 타올랐습니다.


"벨라! 나무를 지켜줘!"


땅이 울리는 거대한 함성과 함께,

바르크는 살아있는 산사태처럼

순찰대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던진 강철 그물을,

바르크는 포효하며 마치 거미줄처럼 찢어발겼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두 명의 병사가 작살창으로

그의 양 옆으로 돌진했습니다.


'쾅!'


강철도 뚫을 기세의 일격이었지만,

바르크의 단단한 갑옷이 불꽃을 튀기며 튕겨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한 창을 양손으로 붙잡아

부러뜨리며 병사들을 내던졌습니다.


바로 그때, 족제비 대장이 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 땅을 황폐화시킨

검붉은 액체였습니다!!


"네놈이 빠를까, 이게 빠를까!"


대장은 바르크를 향해 달려드는 척하다,

몸을 비틀어 유리병을 그의 등 뒤,

벨라와 세 그루의 묘목을 향해 던졌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

바르크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거대한 몸을 틀어,

날아오는 유리병을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마치 방패처럼, 자신의 등과 어깨로.

새끼를 지키는 아비처럼 필사적으로

어린 나무들을 감쌌습니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유리병이

그의 등 위에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끔찍한 액체가 쏟아지며,

뜨거운 인두를 댄 듯 '치이익' 소리와 함께

희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크으윽..!"

하지만 그는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추진력 삼아,

마지막 남은 순찰대원들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는,

상처 입은 위대한 전사의 모습으로.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숲에는 쏟아지는 빗소리와

바르크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벨라는 울음을 삼키며

쓰러진 거인에게 달려갔습니다.

검게 그을리고 녹아내린 갑옷 아래로,

끔찍한 화상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잿빛 땅 위로 붉은 피와 진한 독액이

차가운 비에 섞여들며 기이한 무늬를 그렸습니다.


벨라의 세상은 바르크의 상처처럼

온통 검붉은 잿빛으로 물들어 갔고,

곧이어 숲의 모든 소리가 멎었습니다.


적들의 비명도, 무기가 부딪치던 소음도,

바르크의 신음소리마저도.


세상에는 오직 차가운 빗소리와,

쓰러진 거인의 미동 없는 어깨 위로 떨어지는

벨라의 애달픈 눈물 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나무들은 지켜냈지만,

왜 이토록 세상은 고요하고 시린 것일까.


벨라는 눈물을 닦고,

자신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상처를 살폈습니다.

희망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독액이 스며든 갑옷 파편을

옷자락에 대어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버렸습니다.


끈적이는 감촉,

역하지만 희미하게 섞인 시큼한 냄새.

아주 오래전, 스승의 고서에서 읽었던

'검붉은 눈물'이었습니다.


상처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서서히 말려

시들게 만드는 사악한 독.


그리고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독은, 이 숲에는 해독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 편 '붉은 깃의 유령'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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