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료들을 찾아서
리나는 숲길을 재빠르게 내달렸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날카로운 시선은
숲 너머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던 그녀가 멈춰 선 곳은—
오래전 기억이 머무는 ‘별의 숲’.
“여긴… 진짜 오랜만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이마의 땀을 닦던
리나는 다시 속도를 높였습니다.
“혼자선 할 수 없어.
토리를 구하려면… 동료들이 필요해.”
높은 지대에 있어
언덕이 많고 탁 트인 곳이 많아
별이 가장 잘 보이는 땅,
별의 숲에 드디어 도착한 것입니다.
날다람쥐 종족이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바람처럼 날아다니며
미세한 흔적을 포착해 위치를 알아내는 최고의 추적자.
표적은 절대 놓치지 않는 화살을 쏘며
적들에게 공포의 대명사였던 명사수 릴리가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밤이면 별빛이 머리 위로 축제처럼
쏟아질 것 같은 언덕 위,
릴리의 아지트인 낡은 오두막이 보이자
리나의 눈빛이 번쩍 빛났습니다.
“찾았다.”
리나는 숨을 고르며 낡은 오두막을 향해
성큼 다가섰습니다.
그 순간—
‘쉬이 이익!’
화살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그녀의 옆을 스쳐
오두막 문짝에 ‘퍽’ 박혔습니다!!
리나는 행동을 멈춘 채, 조용히 웃었습니다.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네. 릴리.”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초록 망토를 휘날리며 활시위를
바짝 당긴 릴리가 서있었습니다.
“허얼~대장이었구나?
나 방금 화살 박은 거…
혹시 뒷골 땡기면 미안~?”
여전히 쾌활한 성격이 묻어났지만
어쩐지 앙금이 들어있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리나가 왔음을 모를리 없는 릴리가
일부러 쏜 화살을 보며,
리나는 조용히 옛 동료를 불렀습니다.
“릴리.”
“오, 오, 목소리 톤! 아직도 그 말투네?
여전히 근엄하고 고요하고, 딱 대장님 스타일!
근데 대장님이 왜 여길 찾아오셨을까?”
“그 활부터 내려놔.”
“어머머, 아직도 나한테 삐졌어?
아직도 지난 일 때문에 나한테 차가운 거야?”
“릴리…”
리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가 곧 말했습니다.
“토리가 납치당했어. 카르한테.”
그 순간, 릴리의 눈빛이 떨리면서
활이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토리가?”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곧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에이~ 역시! 어쩐지 대장이 찾아오면
뭔가 항상 일이 일어나더라!
화살 좀 많이 가지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휘익 돌아선 그녀는 잠시 후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습니다.
“짜잔~! 이건 내 최애 화살들이야.
이 아이들, 나 없인 못 살아~
아, 물론 나도 얘들 없인 못 살고~”
“하나도 안 변했네.”
물끄러미 릴리를 바라보던 리나가 말했습니다.
“나? 에이~ 난 더 귀여워졌지!
근데 대장은… 좀 말라 보인다?
요즘 고생 많이 했어?
토리가 대장 마음 힘들게 했구나~?”
살짝 묘한 눈빛으로 리나를 힐끗 보는 릴리.
말은 가볍지만, 웃음 아래 묘하게 삐죽 튀어나온
감정의 가시가 느껴졌습니다.
“그만하자, 릴리. 지금은 그럴 기분 아니야.”
“에이~ 분위기 깬다~! 농담이잖아, 농담!
옛날처럼 말이지~ 그치?”
“다음 목적지는 그림자의 숲이야.
루칸은 아직 거기 그대로 있을 거야.”
“루칸! 꺄악~ 그 수상한 너구리~!!
진짜 숨는데는 도가 텄다니까~~
언젠가 그 녀석, 분명히 없는 거 보고
실컷 욕했는데 어느새 내 뒤에 있더라?”
리나는 묵묵히 걸었고, 릴리는 폭풍 수다를 떨며
쫑쫑 따라붙었습니다.
“아~옛날 생각 난다… 토리도 나름 귀엽긴 했지.
물론~ 누군가의 시선을 자꾸 의식해서
그 귀여움을 숨겼지만~ 헤헤.”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리나를 곁눈질로 훔쳐봤습니다.
“릴리. 지금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했지.”
“알지~ 알지~ 근데 말이야, 대장.
토리 얘기만 나오면 너~무 진지해진다?
질투 날 정도로.”
“…….”
“뭐어~ 옛날 일이니까. 난 삐졌던 것도 반쯤 잊었어.
진짜야. 단지, 그 나머지 반이 자꾸 기억나서 문제지~”
쏘아붙이지 않고도 마음을 콕콕 찌르기.
릴리는 그런 말을 참 잘했습니다.
항상 웃으며 말하지만,
단어마다 화살이 실린 듯 날카롭게
느껴질 때가 많았지요.
말없이 걷던 리나가 멈추어 서서
주먹을 들어 보였습니다.
쉴 새 없이 말하던 릴리도 귀를 쫑긋하며 멈추어섰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그림자의 숲이야.
릴리, 이제 루칸의 흔적을 찾아."
“넵~ 대장님~!! 자~ 그럼, 우리 이상한 너구리씨
흔적 찾으러 가볼까?
‘루칸 사냥’ 스타트!”
쫑긋 귀를 세우고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유심히 듣다가
코로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나아가는 릴리의 모습은,
어느새 수다쟁이에서 추적자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흐르고 흘러
까만 밤하늘에 달이 둥실 떠올랐습니다.
달빛이 비치자 여기저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유독 길게 그림자들이 드리워지는
숲이기에 붙여진 이름,
그림자의 숲.
한밤중 그림자처럼 찾기 힘든 은신의 달인,
자물쇠 따기, 함정 해체와 같은 뛰어난 손재주.
기밀 정보에 밝은 탁월한 스파이,
너구리 루칸이 살기에 딱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한참을 흔적을 찾아 걸어가던
릴리의 눈빛이 번쩍하더니,
깊은 숲 속 어느 나무 사이에 있는
수풀 사이로 뛰어들었습니다.
“저기! 뭔가 있어! 이건 백퍼 루칸 냄새야!
60퍼 너구리, 40퍼는… 음, 썩은 낙엽?
와우~ 향기 테러급!”
"그런데.. 여기 뭔가 이상한걸.
여기서부터 흔적이 끊겼어!!"
이상하다는 듯 돌아보는 릴리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앗!! 대장, 뒤!! 뒤에 뭔가 있어!!"
리나의 등 뒤로 나타난 검은 그림자..
바로 그림자 숲의 옛 동료 루칸이었습니다!
“아이고야~ 또 놀랐네~ 루칸!!
너 언제 거기 숨어 있었어! 나 심장 멈추는 줄 알았거든? 보상해!”
릴리는 턱을 삐죽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게 내 특기잖아.
괜히 최고의 스파이 루칸이라는 별명이 붙었겠냐?.”
루칸이 으스대며 말했습니다.
“웃기시네~특기라니~!!
연락 끊고 사라지는 특기까지 포함이야?
와, 진짜 ‘숨기 장인’은 인정한다, 인정해~”
“미안. 사정이 좀 있었어.”
“에이~ 말로만 맨날 미안하대. 그치, 대장?”
리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루칸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토리 일은 유감이야, 대장."
루칸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뭐? 너 토리가 잡혀간 거 알고 있었어?"
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습니다.
"내가 이래 봬도 스파이라니까~
난 여기저기 정보통도 많다고~"
"그럼 왜 우리한테 먼저 안 왔어?
우리한테 제일 먼저 알려야지~~"
릴리가 또 새침하게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그게… 사실, 소식 듣자마자 달려가려 했거든.
근데 두 사람이 나한테 먼저 올 줄 알고 기다렸어.
그리고… 둘이 만나서 화해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야~화해는 무슨~! 우린 벌써 다 잊었어.
우린 쿨해~그치 대장?"
릴리는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했지만
리나는 못 본체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말했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토리를 구하는 거야.
토리가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아?”
루칸이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내 정보통에 의하면 토리는
지금 대도시 블롯에 있는 시장 관저
지하 실험실에 갇혀있어.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은..
그 도시의 시장이 바로 카르라는 사실이야."
루칸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릴리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뭐, 뭐?? 블롯의 시장이 카르라고?"
"응, 나도 최근에야 알았어. 자경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후,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예감은 들었지만..
블롯의 시장이라니.. 상상도 못 했어."
"그 자, 예전에는 그냥 멋모르고 설치던 악당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주도면밀한 자가 되었어.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알지 못하게
겉모습을 얼마나 잘 치장하는지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어."
"예전과 인상착의가 달라져 카르라고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자, 가면을 쓰고 있던 거야."
“그 악당… 이젠 시장이 되어 나타나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빨리 블롯의 시민들이
진실을 알도록 해줘야 해.”
사뭇 진지해진 표정의 릴리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습니다.
“게다가 이젠 카르 밑에 족제비로 이루어진 특수경호대까지 생겼더라.
이름이… '비늘이빨단'?”
카르의 경호대 이름을 말하며 루칸은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오~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
이런 전개, 나 너무 좋아~”
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활을 굳게 잡았습니다.
“자세한 얘긴 가면서 하자.
다음 목적지는 약초의 숲이야.
자, 이제 출발한다.”
리나의 말에 루칸과 릴리가 일제히 말을 멈추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한참을 따라가던 릴리가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는 듯 말했습니다.
“어이~ 루칸! 우리 이제 두 명 남았다?
자경단 재결성~!”
“약초의 숲에 가면 우리 고슴도치
벨 선생 오랜만에 보겠네~
아~벨 선생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야~벨 선생이 뭐냐, 벨 선생이~!
벨라라는 이름이 있는데!!
'나 다쳤을 때 얼마나 치료 잘해줬는데~
진짜 어머니 같은 손길로 따스하게 치료해 줬지.
우리 자경단의 공식 참모!! 얼마나 똑똑한데!”
“똑똑하긴 하지만 아직도 약초한테 말 걸고 있겠지~!
그 특유의 '약초와 교감 중' 눈빛, 아~진짜 못 잊어~"
리나가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 하더니,
계속 뛰기 시작했습니다.
루칸은 리나의 등을 보며 속삭이듯
릴리에게 말했습니다.
'근데.. 예전 일 이야기 좀 해 봤어?'
“쉬~~~ 잇! 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야.”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릴리는
리나를 향해 눈짓했습니다.
루칸도 알아들었다는 듯, 말없는 리나의 등을 보며
조용히 뛰었습니다.
약초의 숲으로 이어지는 길 위,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습니다.
그 뒤로, 오래된 웃음소리와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달빛 속에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 '약초의 숲, 벨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