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조사서인가 눈물의 일기장인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찬이는 앉아서 책을 읽고 상상하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다소 엉뚱미가 있다 보니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활발하게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거나 체육을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소위 '절친'이라 불리는 친구도 없고, 또래 무리와 어울려 다니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 담임선생님과 여러 번 상담을 하였고, 상대 아이와 그 부모님께 사과를 받기도 했습니다.
찬이는 밝고 명랑하지만, 외로운 아이기도 합니다. 올 한 해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진정한 우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올해도 아이는 어김없이 기초조사서를 달랑달랑 들고 집으로 왔다.
"엄마~~ 이거~~~"
"흡"
나의 숙제가 도착했구나.
기초조사서는 소개팅에 나갔을 때 맘에 드는 그 남자와 눈빛을 주고 받는, 첫인사를 하는 그 순간과 같다.
'선생님 저 까다로운 엄마 아니고요,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는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성명, 주소, 관심분야, 취미, 특기... 막힘없이 술술 적다 마지막에 펜이 멈추고 만다. 대망의 '선생님께 바라는 말씀'. 지금까지는 단답형 문제였다면 이제부터는 논술이다. 초고를 작성하고 퇴고까지 한 뒤에야 원본에 정성 들여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다. 8줄에 영혼을 갈아 넣는다.
공을 들여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이의 상황이 또 이입되었다. 유난이다 참.
'담백해야 해. 담백해야 해.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선생님께 나의 유난스러움을 들킬까 얼른 마무리를 짓는다. 남자선생님이라고 하시니 F형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 있겠다 싶다가도 같은 남자로서 아이의 마음은 더 잘 이해해주시겠다 싶으니 걱정이 덜어져야 한다.
정말 선생님께 바라는 점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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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게 다입니다.
올 한 해는 아이가 따뜻한 선생님 아래서 친구들과 찐하게 축구 한 판 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