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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스트쪼 Nov 16. 2024

나는 손흥민이다

거북이도 축구 클럽 보내주세요

"엄마, 저도 축구 클럽 보내주세요"     


"아이폰은 시장에서 실패할 것이다"라고 했던 스티브 발머(마이크로소프트 CEO) 보다 더 어이없는 선언이 우리 집에 선포되었다.


 우리 집 거북이 찬이는 축구를 참 좋아한다.

다른 친구들은 1, 2학년 때 좋아하기 시작해서 3학년쯤 되면 자타공인 손흥민이 되는데, 찬이는 4학년이 되어서야 축구에 눈을 떴다. 몸치 거북이 눈에 축구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인기 꽤나 있는 친구들이 죄다 같은 축구 클럽 유니폼을 입고 다니며 구름 떼처럼 학교를 휘져었기 때문이리라.

 축구도 이젠 사교육 필수,
공 차는 데도 학원이 기본 코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야 슬리퍼 신고 축구하다 황선홍도 되고, 홍명보도 되었다지만 이제는 축구도 사교육시대.

 공 좀 찬다는 아이들이 다닌다는 유명 축구 클럽에 들어가면 일단 첫 관문부터가 쉽지 않다.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우선 편의점에서 컵라면 한 그릇 때려줘야 하고, 디저트로 게임 한 판을 구워드셔야 하는 것이 국룰. 차량 안에서는 속사포 래퍼처럼 욕설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달궈줘야 겨우 감독님을 마주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거기다 공 잘 차는 친구 앞에서는 가방도 눈치껏 좀 들어주고 물도 한 잔 져다 주며 최신게임이나 유행하는 쇼츠 콘텐츠로 대화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뭘 좀 아는 녀석"으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상남자의 세계에서 이 느려터진 거북이가 그런 눈치와 센스를 발휘할 수 있겠냐 말이다.


아들아. 공만 잘 차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아니, 공을 아주 잘 차면 문제가 안되는데

너는 발도 개 발, 눈치도 개 눈이라는 것이 문제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하겠다는 거북이. 그래 어디 한 번 부딪혀봐라.

 곰이 마늘 먹고 사람 될 시절부터 공을 같이 차던 녀석들이 풀만 먹던 거북이를 쉽사리 허용해 줄 리가 없을 텐데. 걱정대장 나무늘보엄마는 거북이 아들을 축구클럽에 등록시켜 놓고 세상 가장 빠른 표범으로 둔갑해서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거북이 뒤를 밟기 시작했다.

차량대기시간. 편의점 앞에서 만난 친구들은 거북이를 본 체 만 체 했지만 거북이 녀석은 끝까지 친구 옆 비좁은 자리에 세모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다. 그리곤 게 눈으로 친구 핸드폰을 힐끔거리며 공기처럼 자리한다. 오케이. 통과.

차량이동시간. 속사포 래퍼처럼 욕을 쏟아내는 친구를 존경의 눈빛으로 우러러 봐주며 엄지 척을 날려준다. 오케이. 통과.

대망의 축구 연습 시간. 공격수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붙박이 수비수로 날아오는 공을 온몸을 던져 막으며 잡은 공은 통장에 들어온 월급처럼 스쳐지나 다른 친구에게 상납한다. 오케이. 통과.     


거북이는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성적표와 함께 축구를 시작했다.      


 엄마는 늘 줄 위에서 선 곡예사 마음으로 거북이를 흘끔흘끔 훔쳐보았지만 거북이는 꿋꿋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축구를 즐겼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 거북이는 잔잔한 호수 같은 평온한 집에서 빈둥빈둥 책이나 읽고, 말 잘 듣는 동생 데리고 노는 것이 다인 세상 걱정 없는 백수였다. 하지만 축구로 인해 잘해보고 싶은 욕심. 욕심에 따른 노력, 노력의 고통, 고통을 참고 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좌절, 좌절했지만 또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 이 모든 것들을 몸으로 느끼며 거북이는 축구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로애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해사하게 웃으며 간식으로 받아온 마이쮸를 동생에게 건넸다.

 

동생. 봐라. 나 멋지지?     


나의 거북이, 나의 찬이는 그렇게 묵묵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역경을 디디고 지금은 손흥민이 되 냐고?

손흥민이 되는 게 그렇게 쉬울까. 드라마는 그렇게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

거북이는 여전히 붙박이 수비수이고 친구들 옆에 공기처럼 앉아있다. 하지만 꽤나 잘 막는 수비수이고, 맑은 공기를 친구들은 반가워한다. 더욱이 이번참에 용기를 내어 축구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취미부 대회이기는 하지만 그전 대회까지도 친구들에게 피해가 된다며 극구 참가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조금 든든해졌는지 참가 권유를 슬며시 받아넣었다.      


달빛이 물드는 시간, 오늘도 땀을 흠뻑 흘리고 온 아들은 엄마와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오랜만에 엄마를 넘치게 안아준다.


아들, 아들의 오늘의 감사는 뭐야?

엄마의 오늘의 감사는 아들이 축구대회에 참가할 용기를 내주었다는 거야.

아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주었는지 엄마는 알아.

실수할까 봐 불안할 테고, 친구들에게 피해 줄까 봐 염려도 되고, 따라오는 비난도 두려웠을 텐데 그럼에도 해보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어서 엄마는 너무 고마워.

아들 말이 맞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그래서 최선을 다해보는 거야. 피해되지 않도록. 도움이 되도록. 아들은 이미 충분히 괜찮은 개 발이야     

”엄마!!! “     

재미있게 해. 재미있게.     

"즐기는 자가 이기는 자다." – 공자  

느려터져서 엄마에게 고구마 100개를 선물해주는 거북이 아드님을 두신 어머님들게 꼭 전하고 싶다

어머님들. 운동시키세요.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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