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카를로스의 말로는 에덴스아크의 지도자들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강률이 정찰기 조종사와 카를로스에게 농장의 작물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맛을 보게 할 때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조종사의 위에서 텅 빈 공간을 울리는 ‘꾸루룩 꾸루룩~’ 들렸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쥐고기와 찐 열매를 저녁으로 대접했다. 처음 접하는 식재료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과 호기심이 엇갈리는 도전. 조심스러워했다가 이내 감탄을 하며 먹는 모습을 보며 저녁을 즐겼다.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카를로스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하겠는지 중간에 말을 멈췄다. 하지만 모두가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배가 차니 카를로스와 조종사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때서야 지도자가 탄 정찰기가 착륙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률과 두 사람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아갸는 그들의 뒤에서 어깨 너머로 상황을 구경했다. 정찰기에서 내린 사람은 엘라라였다. 그녀가 직접 정찰기를 조종해서 왔다. 강률은 정찰기 안을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에덴스아크의 지도자는 세 사람이었다. 나다니엘의 첫 번째 아내인 엘라라와 마지막 아내였던 말리카 그리고, 다섯 번째 아내에게 태어난 나다니엘의 첫 번째 아들 레이지.
강률은 엘라라가 와서 다행이라 여겼다. 레이지가 왔더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 어둠에 갇힌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말리카는 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강률이 주저 없이 에덴스아크를 떠나도록 동기를 준 천박한 여자가 바로 말리카다. 강률을 향해 웃는 엘라라에게선 여전히 사람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강률의 집 뒤에 배경처럼 서 있는 벼랑 속에 박힌 암석들에서 흔흔하게 발광하는 빛, 우주 행성들의 빛 그리고 지는 달과 떠오르는 달의 빛이 어우러져 자연의 조명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엘라라가 그들 앞에 섰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흰머리가 잘 어울리시네요.”
강률은 자신의 놀람과 인사를 무례하지 않게 섞어 건넸다. 엘라라는 미소를 지으며 반가움을 포옹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놀랍도록 이상하다는 듯 이마에 웃는 주름을 지으며 자기 팔 안에서 강률을 풀었다.
“어떻게 내가 강률, 당신 몸을 만질 수 있지?”
그리고는 그의 주변을 빙 돌며 위, 아래, 앞, 뒤를 살피고는 두 손으로 강률의 뺨을 만져 다시 확인했다.
“전에는 투명해서 만져지지 않았잖아?”
강률의 얼굴에 자부심어린 웃음이 스쳤다.
“네.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 엘라라는 사람들 뒤에서 어리숙하게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갸를 쳐다보았다.
“애완동물?”
강률은 적당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대신 손으로 집안을 가리키며 청했다.
“들어가시죠. 따뜻한 차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엘라라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종사와 카를로스에게
“미안하지만 우리 둘이 조용히 할 얘기가 있어.”
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두막 밖에 대기했다.
강률이 문을 닫았다. 엘라라는 집안을 둘러보다 문명의 결과물인 도구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도구들은 강률이 에덴스아크에서 챙겨 온 것들이었다.
“삼 년 전까지는 자네가 우주선에 들락날락 하길래 연을 아예 끊은 건 아닌가보다, 생각했었어. 여기, 자네만의 천국을 꾸미려고 도둑처럼 몰래 왕래했던 거였어.”
그리고는 뭐가 웃긴지 혼자 깔깔 웃었다. 강률은 엘라라의 웃음 버튼을 누른 게 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CCTV화면에 비치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보따리가 보였다. 그녀의 머릿속 장면이 강률의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강률은 당시 에너지체인 상태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왔는데, 사람들의 시선에 띄지 않게 조심했지만, 사방에 설치된 CCTV는 인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CCTV에는 물건이 든 보따리만 이동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잡혀 있었다.
부끄러움에 강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엘라라는 웃음을 거두고 고민에 찬 한숨을 길게 내뱉고 말했다.
“많이 보고 싶었네.”
엘라라는 에덴스아크에서 강률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 유일한 인간이었다. 일렁이는 불빛에 그녀의 주름과 백발이 더 초췌하게 보였다. 그런 엘라라를 바라보는 강률의 마음에 연민이 일었다. 강률의 시선이 그녀의 늙음에 붙들린 채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엘라라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두 사람을 응시하는 아갸에게 무심한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확실한 원인은 몰라. 그냥 늙어가고 있고 회복할 방법을 못 찾고 있어.”
그녀의 시선이 강률에게 돌아왔다. 속마음을 확인하듯, 눈에 힘을 주고 강률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 속에는 아무런 계획도 들어있지 않았다. 죽어가는 인간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없었다. 뭐, 이해는 한다. 인간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이제 막 들었지 않은가. 계획을 세우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의 눈 속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건, 섭섭했다. 인류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무? 권리? 사명? 이유? 그런 것들이 강률의 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인간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원하니?”
엘라라가 물었다. 강률에게는 그런 마음도 딱히 없었다. 인간을 향한 관심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안이서, 스승님이 그에게 남긴 유언이 그의 머릿속에 되살아 난 것뿐이었다.
[“강률아, 노바리스 에테리아에서의 영성 지도자는 네 몫인 것 같아.”]
이서의 말이 떠오른 순간 그녀에 대한 원망도 같이 올라왔다.
‘굳이 떠나셔야 했을까? 이렇게나 생소한 곳에 나만 홀로 남겨두고? 스승님은 나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셨나? 나다니엘이 그렇게나 귀한 존재였나? 그럼 나는? 나는 도대체 스승님에게 뭐였지?’
심정이 복잡해져 그의 두 눈이 흔들렸다.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강률은 맞은편 의자에 자신의 몸을 의탁했다. 강률은 스승님의 유언을 따르려고 노력했었다. 영성 수업 과정을 만들어 사람들을 인도하려고 했었다.
“엘라라, 난 노력했었어요. 내가 당신들을 거부한 게 아니에요. 당신들이 날 거부했었지.”
엘라라는 강률의 말을 일부 받아들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곧 눈에 힘을 주고 강률을 응시했다.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받아치겠다는 표정이었다.
“넌, 처음부터 우리를 싫어했어.”
엘라라가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강률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우주의 정보가 그에게 송신됐다. 그 정보에 따르면,
강률의 마음에 에덴스아크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나다니엘의 일부분이었다. 나다니엘과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목표로 같은 행동을 했던 존재들. 나다니엘의 분신들. 그런데, 나다니엘은 등장만으로 강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토록 사랑하며 믿었던 스승님마저 떠나게 했다. 엘라라의 말이 맞다. 강률은 이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 뿐 일까? 나다니엘의 무리라는 건 이유의 일부분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강하게 들었다. 더 큰 무언가가 있는데, 왜인지 우주는 그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다. 강률이 궁금해 하는 정보는 웬만한 것은 바로 머릿속에 입력이 됐는데, 이 찜찜한 기분의 원인에 대한 정보는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