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를로스

드디어 강률을 찾음

by 안이서

하늘에서 인공적인 기계 소리가 ‘우웅~’하며 하늘을 스치듯 지나쳐 멀어지더니 다시 ‘우웅~’하며 되돌아 왔다. 강률과 아갸는 소리의 출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새! 크으으으은 새!]

우주의 번역기가 알려준 아갸의 말이다. 아갸가 ‘큰 새’라고 묘사한 것은 에덴스 아크의 정찰기였다. 정찰기는 강률의 농장 주변을 몇 번 선회하더니 좀 떨어진 평야에 조심스럽게 안착했다. 원시적 형태의 농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조종석에 앉은 사람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의 옆에 앉은 이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오백미터 떨어진 거리였지만, 그의 실루엣으로 강률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카를로스’라는 이름의 안보담당관이었다.

‘이 먼 곳까지 무슨 일이지?’

탐험팀원들은 종종 외부로 나가지만, 안보담당팀은 좀처럼 에덴스아크를 벗어나지 않았었다. 서두르는 그의 걸음을 보니 에덴스아크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동시에 카를로스에게서 반가움과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취의 에너지가 왕왕 풍기고 있었다.

[예쁘다~~~!]

옆에서 같은 곳을 보던 아갸가 넋을 놓은 표정과 말투로 중얼거렸다. 뭐……, 스페인 태생 특유의 섹시한 이미지가 있다는 건 강률도 부정하지 않는다. 아갸의 눈길은 여전히 카를로스에게 고정된 채였다. 지금 아갸가 흘리는 에너지 정보는 뭐랄까? 자신과 같은 종족 보다는 인간에게 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강률은 피식 웃으면서 아갸에게 물었다.

“너는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거냐, 남자를 좋아하는 거냐?”

강률의 말따위는 들리지도 않는가 보다. 아갸의 대답이 없어도 답은 알 것 같다. 아갸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거다.

“영성 지도자님 맞으시죠?”

카를로스가 큰 소리로 물었다.

“카를로스, 오랜 만이에요.”

강률은 그를 향해 걸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악수를 나눌 거리만큼 좁혀졌다. 기쁨 가득한 카를로스의 표정만으로 그가 꽤 오래 강률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두 사람은 상대를 보다가 서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가 어떻게 영성 지도자님의 손을 잡을 수 있죠?”

카를로스는 그가 기억하는 반투명 상태의 강률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는 모습에 놀랐고,

“왜 이렇게 늙었어요?”

라고 묻는 강률은 카를로스의 반백 머리칼과 눈가의 주름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반가움이 가득했던 그의 눈에 안타까움과 두려움이 서렸다.

“일단 들어갑시다.”

강률은 집으로 그를 청했다. 오두막으로 향하며 카를로스의 시선은 농장에 열린 열매들과 중세풍의 시설물들에 빼앗겼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자기를 훑어보는 유인원. 지금까지 카를로스의 임무는 야생 유인원들이 에덴스아크에 침범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었다. 이 유인원들은 호기심이 많아 수시로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쫓아내는 일은 참 귀찮고 하찮았다. 자신의 임무에 회의감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침팬지나 쫓아내자고 우주를 건너 온 건가?’

하지만 이 암컷은 옷을 지어 입은 모습을 보니 야생 동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 온 강률은 테이블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카를로스는 집 안도 둘러보았다. 다 강률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알겠다. 모든 소품 하나하나가 정결하고 섬세했다. 그리고 아늑하고 정겨웠다. 카를로스의 마음이 묘하게 일렁였다. 오래 전 잊어버린 낭만? 여유? 유유자적한 삶, 창조하는 삶, 그런 것들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이 피어났다. 몸이 늙으니 남성 호르몬이 줄어서 인지, 서글픔도 따라오며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내가 새지구에서 발견한 향이 좋은 차 한 잔 대접할게요.”

강률은 아궁이 위에 물이 든 주전자에 찻잎을 넣으며 말했다. 이제야 말하는데 사실 강률은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마다 투명한 몸으로 에덴스 아크의 자신 방에 들어가 챙겨서 오고는 했었다.

“설마, 마시고 죽지는 않겠죠?”

카를로스가 미소를 지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밖에 심은 농작물은 전부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에요. 맛도 일품이고.”

잠시 후 컵에 차를 따라서 테이블로 와 맞은편에 앉은 강률이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강률의 질문에 카를로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린 죽어가고 있어요. 이곳에 이주한 인간들은 멸종될 거예요.”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강률을 바라보았다.

“위에서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영성 지도자님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강률님을 4년이나 찾아 다녔습니다. 이곳을 발견하고 착륙하기 전에 에덴스아크의 지도자들에게 소식을 전했어요. 지도자님들도 바로 이곳에 오실 겁니다.”


좀 떨어진 구석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던 아갸에게 잊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4년 전 친구들이 몰살됐던 그 날 오전 처음 보는 새가 휙 지나갔다. 아갸가 아는 새들은 모두 유유히 날아다녔지만, 그 새는 ‘우웅!’ 소리를 내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었다. 그래서 제대로 못 봤다고 생각했었다. 강률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가 하늘에서 새를 타고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날 보았던 새와 비슷한 것 같았다. 소리로 유추해 보자면 같은 새가 맞다. 물론 그 새가 그 날의 참상과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길한 기운이 아갸의 가슴에 뭉글뭉글 모여들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2화자유로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