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인가 심판자인가
중앙 광장에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광장 위로 선단이 있고, 강률을 선단 중앙에 안내한 엘라라가 뒤로 가 레이지 옆에 앉았다. 강률은 수많은 시선이 오직 자신에게 쏠린 이 자리가 너무도 부담스러웠지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률은 긴장을 풀려 낮은 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한 종교의 경전 내용이지요.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분별하는 능력이 생긴 것에 신은 경악합니다. 신도 생각하는 능력을 사용해서 신 노릇을 하면서, 인간에게는 죄를 지은 것이라 비난합니다. 신의 능력이 생긴 인간이 영원히 살까 두려워해 에덴에서 쫓아내는 내용이었습니다.”
강률은 말을 끊고 군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강률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각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린이 성경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신에게 여섯 살의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전 교회 근처엔 발도 들이지 않았었습니다.”
어린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강률은 과거의 자신에게 미소를 지었다.
“노바리스 에테리아, 새 지구로 이주한 후, 그러니까 인간의 행동을 제어할 규칙이 없는 세상에 도착하자, 우리는 너무도 빨리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고 따랐습니다. 그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경전 속의 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분별력은 있으나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모르는 인간에게 영생까지 주어졌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전 이 행성을 유랑하며 인간의, 당신들의! 손에 무참히 살육된 동물들을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피로 물든 들판, 뜨겁게 달궈진 피비린내.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떠올라 강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강률의 말을 들은 사람들도 여기저기에서 놀라는 반응이 보였다. ‘인간? 우리? 난 아닌데? 도대체 우리 중 누가?’하는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증거가 없는 추측성 얘기는 삼가 해 주십시오.”
뒤에서 레이지가 젊잖게 말했다. 강률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반박했다.
“우주의 정보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군중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강률이 우주의 정보를 직접 송수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가 그에게 드러날까 그의 시선이 근처에 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당신들은 자유의지가 주어졌을 때 신성이 아닌 동물성을 택했습니다. 제 얘기를 반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신들은 타락이 아니라 온전한 자유라고 했지만, 지금도 4년 전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주장하겠습니까?”
강률의 뒤에서 레이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민망하니 그 얘기는 이쯤에서 끝내자는 의사와 자신의 권위로 선을 넘은 강률을 좀 눌러야겠다는 의지가 절묘하게 섞인 기침이었다. 하지만 강률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들이 더 경각심을 세워야 한다고 여겼다.
“당신들의 유전자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몸이 영생하리라 믿고 스스로 신이라도 된 듯 행동했습니다. 당신들이 즐긴 ‘온.전.한.자.유’가 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었다면 생명나무 열매도 기꺼이 주었겠지요. 하지만, 신은 당신들에게서 영생을 빼앗았습니다. 그것으로도 당신들은 죄인이라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공포와 탄식의 한숨이 터졌다. 자신들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강률에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군중 속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그럼, 죽지 않는 당신은 신입니까?”
소리의 출처를 보니 야미였다. 그의 주변에는 사색도 철학도 없는 일행들이 철딱서니 없이 히죽거리고 있었다.
물론 강률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건 안다. 단지 여기 있는 존재들 중 신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주제 파악도,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있는 저 일행을 보니 곧이곧대로 대답하기 싫어졌다. 어떻게 해야 저들의 낯짝을 부끄러움에 달아오르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에 딱 맞는 답이 없어 되물었다.
“그대들 생각에 난 어떤 존재인 것 같은가?”
그들은 대답 꺼리를 찾으려 눈알을 굴렸지만 전처럼 유령, 귀신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단단한 육체가 있었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하자니 그의 몸은 순식간에 투명해져 자취를 감출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신’이라고 대답하기엔 그를 비웃고 경멸했던 과거가 있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답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다행히 여인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당신은!”
말리카였다.
“강률, 당신은 구원자이십니다.”
말을 마친 말리카는 강률의 앞으로 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가냘픈 어깨가 애처롭게 들썩였다.
‘설마, 우는 건가?’
말리카의 행동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과장돼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전, 전 죄인입니다.”
그녀의 고백에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거짓이라는 의심 같은 건 할 수가 없었다. 말리카의 감정에 동요된 몇몇 사람이 같이 흐느꼈다.
그의 앞에 엎드려 울부짖는 말리카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에겐 얼굴에 범벅이 된 그녀의 눈물이 진실 돼 보이겠지만 강률은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거짓의 에너지를 보았다. 핏빛 기운이 섞인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광장으로 퍼져나갔다.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지난 날 제가 당신에게 보인 모든 죄를 부디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소똥 내가 진동을 했다. 강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 사악한 여자야, 네가 입을 벌릴 때마다 똥내가 진동한다! 네 뻔뻔한 낯짝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당장 내 앞에서 꺼져라!”
속에 있는 말을 토해 낸 강률은 멈칫했다.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온몸에 느껴졌다. 강률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맑고, 숭고한 모습이어야만 했다. 지금 사람들의 눈은 그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구원자야 아니면, 심판자야?’
그들에게는 말리카의 검붉은 에너지도, 악취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이 본 건 가련한 여인의 회개를 비난하는 미친 남자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