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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Dec 06. 2024

피아노 배우기 전, 피아노 사주셔도 돼요

대신 사준 후에는 눈과 귀를 잠시 막자.

"선생님, 아이가 이제 피아노에 재미를 붙인 것 같은데 이제 피아노 사줘도 되겠죠?"

"어머니, 당연하죠. 사실 피아노 배우기 전부터 피아노 사주시면 더 좋아요!"


"네? 피아노를 못 칠 때도 피아노를 사주는 게 좋다고요?"

"그럼요!"


아직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는데 피아노부터 사주는 게 좋단 말은 무엇인가. 해맑게 피아노를 사주라고 말하는 선생님 앞에서 티는 못 냈지만 분명 이런 마음이었을 터.


'저 선생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피아노가 한두 푼도 아니고. 사고 나서도 안 칠까 봐 걱정이구만.'




학부모님들께 피아노 구입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직접 그것에 관한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두 아이 모두 유아기 시절 피아노 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피아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는 피아노가 낯설지 않은 존재. 피아노 의자 아래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페달을 만져보기도 하고 가끔씩 피아노를 눌러보며 노는 모습도 보여줬다.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옆에 와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전혀 관심이 없는 날도 많았다.


그 아이가 6살이 됐을 때, 유치원에서 하원하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급하게 피아노로 달려간 날이 있었다. 띵, 뚱, 땡 작디작은 손가락을 삿대질 모양으로 만들더니 건반은 한참 만진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뭔가를 찾고 있었다. 한참을 띵뚱땡, 띵뚱땡을 반복하더니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웃는다. "엄마 이거 들어봐요!"


오!!!!!! 비행기다! 이건 분명 떴다 떴다 비행기다. 내 귀에 비행기 노래가 들린다. 우리 아이가 작디작은 삿대질 손으로 비행기 음을 누르고 있다. 설마, 우리 아이가 절대음감 소유자? 아이가 음악 천재로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하니 눈은 커지고 콧구멍은 벌렁거렸다. 하지만 테스트를 해보니 전혀 아니었다. 음악천재 아이엄마로 5분 정도 살아봤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그 뒤로도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가 많아질수록 어느 날은 피아노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이 들려오기도 했고 유치원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모두 제자리' 노래도 들려왔다. 이 모든 건 피아노 교육 없이 이루어졌다. 엄마가 전공 자니깐 엄마의 재능을 닮은 거 아니냐고? 배 아파 낳은 게 억울할 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는 음악에 전혀 관련 없는 아빠를 닮았다.

악보를 전혀 못 보는 아이였지만 귀로 들은 노래를 피아노 음에서 스스로 찾은 것이다. 이런 활동을 많이 한 아이는 귀가 트인다. 청각 주의력이 올라가고 '듣기'가 저절로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나진 않았지만 상대음감을 발달시킨 것. 악보를 배우기 전 이런 활동을 자연스럽게 하니 도, 레의 차이를 스스로 구별하게 되었고 악보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악보 보는 법을 궁금해해서 7세 후반에 조금 알려줬더니 8세부터는 자기 수준의 악보를 찾아서 레슨 없이도 스스로 악보를 보고 연주한다. 지금도 정기적인 레슨은 하지 않지만 아이는 종종 스스로 피아노 앞에 앉는다.


나는 이 모든 게 피아노가 우리 집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나에게 스스로 칭찬한다. 참 현명한 소비였다고.


피아노 교육을 시작한 가정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 있다. 그건 바로 피아노 구입에 관한 고민.

고민도 단계별로 있는데 1단계는 우선 피아노를 '사느냐, 마느냐.'이다. 그다음 2단계는 '어떤 피아노를 사줘야 하지?'겠지. 마지막 고민은 '사줬는데 잘 안치면 어떡하지?'가 된 후 다시 1단계로 돌아온다.

마치 악보의 도돌이표처럼.


우리는 왜 이런 고민을 끝없이 하는 걸까. 그 고민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2가지다.

피아노는 부피가 큰 악기이다 보니 집안 공간도 생각해야 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

그런데 가장 큰 걱정은 3단계 고민, '사줬는데 잘 안치면 어떡하지?'때문이 아닐까. 저 비싼걸 큰맘 먹고 사줬는데 방 한편을 지키는 인테리어로만 쓴다면 마음이 쓰리겠지. 사야 되는 이유보다 사지 않을 이유가 더 많은 소비. 나는 그럼에도 사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구입시기가 피아노를 배우기 전이면 더 좋겠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했지만 피아노를 배우지도 않는데 사주라니, 아직도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학부모님들께 '피아노 배우기 전 피아노 사주셔도 돼요.'라는 말을 할 때는 나도 항상 부모님들의 반응을 살핀다. 10%의 부모님들은 감사하게도 맞장구까지 쳐주시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시고, 40%의 부모님은 어떤 것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하신다. 남은 50%의 부모님은 쿨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는 스타일.




하지만 부가적으로 설명해 드리면 나의 생각에 공감해 주시고 그 뜻을 잘 이해해 주셨다.


우선 우리한테 가장 익숙한 책과 피아노를 비교해서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큰 고민 없이 책을 사기 시작한다. 초점책을 시작으로 촉감책, 사운드북, 그림책 등 꾸준히 책을 구입한다. 신생아 시절 초점책을 빤히 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우린 잠시 '혹시 이 아이,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한 도치맘의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어린아이 일 경우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에 익숙해진다. 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면 책의 스토리에 빠져드는 경험도 하게 될 거다. 글을 읽지 못 하지만 그림만 보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꼬마 작가님이 되기도 하겠지. 책이 아이의 장난감이자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다 한글을 배우는 순간, 드디어 책을 온전히 이해하며 읽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피아노다. 피아노가 집에 있는 아이는 초점책을 보듯 눈으로 피아노를 탐색하고 촉감책을 보듯 오감으로 피아노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피아노가 익숙해졌다. 엄마나 아빠가 피아노에 소리를 들려주는 날에는 피아노 소리에 집중해 빠져드는 경험도 하게 될 거다. 피아노를 가지고 놀다가 자기 귀에 좋은 소리를 찾아 한음씩 눌러보는 귀여운 꼬마작곡가도 되겠지. 피아노가 아이의 장난감이자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음표와 계이름을 배우는 순간, 드디어 악보를 보고 연주하며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하겠지.


어떤가,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책과 피아노는 부피도 다르고 가격도 달라 비교대상을 잘 못 잡은 걸로 생각할까 싶어,

나의 경우를 또 소개해본다.


우선 피아노부터. 우리는 아파트에 거주하기 때문에 전자피아노를 구입했다. 야마하 피아노였고 그 당시(10년 전) 코스트코에서 80만 원대로 구매했다. 아이들 놀이방에 자리를 잡은 피아노 크기는 가로가 약 130cm이다. 10년 동안 이사를 하면서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긴 했지만 전자피아노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아 추가로 드는 비용은 없었다.


그다음은 책이다. 피아노는 1대만 두고 살지만 책을 1권만 두고 사는 가정은 많이 없을 것이다. 우리 집은 현재 아이들 수준에 안 맞는 책은 버리거나 나눠줬는데 아직도 700권이 넘는 책을 가지고 있다. 아기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집으로 구매, 책 구입비용을 가장 적게 잡아봐도 1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거기에 책은 항상 책장과 함께 다니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천장에 닿을 듯한 큰 책장 2개와 작은 책장 2개가 있다. 책장비용은 총 100만 원 정도. 책장은 공부방과 아이들 침실방, 놀이방, 거실 한편 총 4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나의 경우 피아노에 든 총비용은 90만 원이 안 됐고 책은 10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공간도 피아노는 방 한편에만 자리 잡고 있지만 책장은 3개의 방 곳곳과 거실 한편 마저 자리 잡고 있다.

가격과 공간 두 가지 요소만 비교했는데도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여기서 '에이, 그래도 책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만 피아노는 그만큼이 되나?'라고 아직도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잊지 말고 기억하셔라. 내 경험상 피아노 잘 치는 아이가 공부도 겁나게 잘한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나면 이제 어떤 피아노를 구입해야 하는지 질문이 들어오고 피아노 브랜드를 추천해야 하는 순서가 온다. 그렇지만 나는 피아노를 특정해서 추천을 못한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바로 '예산에 맞추라는 것'과 '공간에 맞추라는 것' 딱 2가지다.


물론 전공자한테 추천하는 거라면 특정 브랜드도 언급하고 가격대며 피아노 생산시기까지 추천을 해주는 것을 넘어 판매자까지 연결해 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소리만 괜찮다면 소형 악기도 괜찮다.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61 건반을 골라도 좋고 장난감으로 분류된 것만 아니라면 소형 피아노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바로 소비의 민족 아닌가.


피아노, 가볍게 한번 알아볼까?

159,000원


이것보다는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

359,000원


이거 의자랑 배송비 추가하면 이게 더 낫네!

499,000원


그런데 이거 한번 사면 꽤 오래 쓸 텐데...

598,000원


이것도 가구인데 하얀색이 우리 집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을까?

870,000원


그 브랜드가 좋다고요?

1,610,000


백이 넘었네 이 정도면 진짜 사주는 게 낫지. 한번 알아볼까?

300만 원


에잇 너무 비싸다. 구입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신랑이 차를 살 때 보여주었던 스킬을 우리도 배웠나 보다. 견적이 점점 커진다. 이제 159,000원짜리는 눈에도 안 찬다. 다시 구입 자체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돌아간다. 부탁이니 제발 이러지 마시라.



구입하길 마음먹으셨다면 우선 적당한 예산을 정한다. 예산의 기준은 알려드리겠다. 그것은 아이가 피아노를 잘 안쳐도 화가 나지 않을 만한 가격이 바로 적정한 예산의 기준이다.


그다음 '공간'을 생각하자. 공동주택에 거주하거나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가정이라면 전자피아노를 추천한다. 아이들은 신기하게 이른 아침이나 밤이 되면 피아노에 관심을 갖는다. 그럴 땐 아무 말하지 말고 너의 행동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친절히 헤드폰을 씌워주자. 이 얼마나 다정한 행동인가.


업라이트 피아노를 구매한 가정이라면 헤드폰 연결을 할 수 있는 사일런트가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스스로 눈과 귀를 잠시 닫아두자. 우리 아이는 지금 예술을 하는 중이며, 원래 예술이란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해라. 한층 너그러운 사람이 되며 마음이 편해진다.


또 아이가 피아노를 매일 치지 않고 등한시 여겨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라. 우리도 사놓고 안 쓰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물건은 또 버리면 꼭 필요해진다. 조금 덩치가 큰, 가격이 나가는 물건이지만 '나중에는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좀 지켜봐 주자. 당근에서 사 오는 것은 괜찮아도 이 아이를 올리지 않길 약속하자.


우리가 하는 이토록 다정하고 너그러운 행동이 훗날 피아노를 아이의 감정 친구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행동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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