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잘하는 아이의 비밀을 알아냈다.
저 아이는 뭔가 좀 특별해. 엄마 아빠가 음악 전공한 거 아니야? 비결이 뭐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좀 특별한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절대음감 같은 음악적 재능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뭔가 평범한 아이들하고는 다른 특별함.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유독 더 음악이 좋게 들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아이.
그래서 콩쿠르에서 상을 휩쓰는 아이. 무엇이 이 아이들을 특별하게 만든 걸까.
몹시 궁금했고 그 비결을 알기 위해 수많은 상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특별한 아이들의 가정에서 발견된 공통점. 그것은 바로 어릴 때부터 '듣기'교육을 꾸준히 했다는 것. 비결은 '듣기'에 있었다. 비결을 알고 난 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음악은 듣기에서 시작하는 게 기본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기본을 놓친 채 악보를 보는 눈만 바쁜, 혹은 연주하느라 손의 근육만 바쁜 음악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잠시 깊이 생각해 본다.
요즘 음악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음악학원이 생겨났고 문화센터에서도 유아를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다. 음악교육을 빨리 시작하는 것. 너무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바로 음악교육을 악기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악기를 배우는 건 좋지만 그전에 선행되면 좋은 교육이 바로 음악 교육이다. 둘이 뭐가 달라?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 음악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벌써 고개를 끄덕이고 있겠지. 물론 악기를 배우면서도 음악 이론이나 음악 관련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한 음악교육은 좀 더 기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듣기'이다.
음악은 소리다. 소리가 없는 것을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이 소리를 듣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소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 잘 들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소리를 듣고 살고 있을까. '아니다'라는 답은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닐 터. 아이들에게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수업이야기를 통해 이어 나가겠다.
쌍둥이 레은이네의 수업이야기
얼굴이 너무 똑같아서 머리핀 색깔로 자신들을 구별할 수 있게 꾸민 귀여운 쌍둥이 자매가 수업에 왔다. 5세 하반기에 온 아이들이지만 6,7세 못지않게 아주 똘똘한 아이들. 수업을 진행할 때는 5세인걸 전혀 못 느끼다가 작디작은 손가락만 보면 '아, 너무 귀여워. 5세 맞네.'라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아이들이었다.
레은이네가 상담 왔던 첫 날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른 어머님 소개로 오셨던 레은이네 어머니. 아이가 시험관으로 늦게 생긴 터라 자신은 또래 엄마들보다 나이가 좀 많다며 자신을 소개하셨다. 갑자기 2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하나는 간절히 바라던 아이라 얼마나 귀하고 예쁠까였고 두 번째는 아이에게 너무 관심이 많아서 내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거 아닐까였다.
다행히도 상담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건 첫 번째 생각만 하면 되는 가정이었다는 것. 또 알게 된 건 레은이네가 학습적으로 많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지내는 곳은 소위 말하는 영유(영어유치원)가 차로 30분 내에도 6곳 이상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즉 수요가 많다는 것, 부모님들의 교육열이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소개를 통해서 온 가정의 아이들 90%는 영유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의 학습량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엄청나다. 놀이식 영유라고 해도 정말 놀기만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래서 학습적으로 달리지 않아도 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유아들이 난 낯설지 않다. 레은이네 가정도 마찬가지로 학습적으로 달리고 있는 가정이었다. 5세지만 아이들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당장 내일 학교를 들어가도 될 정도였으니까. 지금 소개한 레은이네 상담 이야기를 잘 기억해 두길 바란다.
다시 수업이야기로 이어가겠다. 나의 수업 중에는 '사운드 스크랩북'(사운드 스크랩북은 지역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화 전시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이라는 주제를 가진 수업이 있다. '사운드 스크랩북'이란 단어 그대로 소리를 스크랩해서 책을 제작하는 활동이다. 그 수업에서는 소리에 관한 질문이 많이 오고 가는데 쌍둥이 중 한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소극적인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어려워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직 어린 아이다 보니 컨디션도 살펴보았지만 컨디션과는 다른 문제가 있음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그건 '소리'자체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 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수업이 깊어질수록 아이는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청력 문제가 있는 친구는 아니다. 위에 상담 내용에도 나왔지만 학습적으로 많은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 시기의 아이들은 눈보다 귀로 학습을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아이였다.
내가 그날 수업에서 느낀 건 '아이가 분명 소리는 듣고 있지만 소리에 대한 집중력은 없다'였다.
어머님과의 피드백 시간.
어머니, 오늘 수업에서 평소와 다른,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오늘 주제는 '사운드'였는데요. 소리에 관한 질문이 오갈수록 아이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아이가 소리에 대한 집중력을 더 길렀으면 좋겠어요. '듣기'는 훈련을 통해서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을 꼭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진도가 걱정되시겠지만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사교육 시작 시기도 '듣기'에 대한 집중도가 어느 정도 완성 된 후로 권해드리고 있어요. 레은이네처럼 이미 한글을 다 뗀 아이들도 있지만 한글을 아직 모르는 아이들은 '듣기'능력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의 양이 정말 다르거든요. 잘 들어야 그걸 이해하고 다시 아웃풋으로 보여 줄 수 있답니다. '듣기'가 잘 안 되는 아이들은 연주할 때 음이 틀려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요. 음악을 표현할 때도 이해하는 속도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느려요.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자면 '듣기'가 잘 안 되는 아이들은 동요나 음악을 반복적으로 들려주어도 잘 따라서 부르지 못합니다 어머니.
피드백이 끝나자마자 나온 어머니의 실제 반응.
어. 쩐. 지.
딱 세 글자지만 그것은 내 피드백에 힘을 보태주는 반응인 게 확실하다.
어머니는 그동안 궁금했던 게 풀린 표정이셨고 말을 이어가셨다.
맞아요 선생님. 저 '아웃풋'때문에 엄청 고민했어요.
'아웃풋'이라는 단어를 교육만큼 많이 사용하는 곳이 있을까. 쉽게 말해 배운 만큼 얼마나 잘 출력하는지 보는 거다. 쌍둥이 가정이라 모든 생활환경은 동일했다. 그중 어머님의 아웃풋 고민지점은 바로 영어였다. 하루 종일 영어 CD를 틀어놓아도 한 아이는 곧 잘 영어 노래며 간단한 회화를 잘 따라 하는데 한 아이는 아웃풋이 안 됐다는 것. 그것을 보고 영어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게 아닌데. 들리는 게 없으니 안 따라한 것뿐인데.
생각보다 많은 가정이 레은이네 이야기에 많이 공감을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만 '영어'라는 과목에 공감을 하는 것 같다. 그 과목을 '음악'으로 바꿨을 때는 얼마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오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만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내 아이는 음악을 못할 수 있다고 미리 결론을 내린다. 정말 아이들이 꼭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어도 '음악이니까'라며 태평양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버린다.
'국어'라고 생각해 보자. 아이에게 아무리 말을 가르쳐도 말을 못 하는 경우든 '엄마'라는 단어를 가르쳤는데 자꾸 '인마'로 단어를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누구보다 빠르게 상담센터나 치료센터로 달려가겠지.
'음악'도 똑같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중이 다를 뿐. 하지만 음악 교육을 하는 나는 이 현상이 동일하게 느껴진다. 도-미-솔이 악보에 있는데 도-미-파를 누르고도 음이 틀렸는지 모르는 아이. 간단한 리듬 모방이 힘든 아이. 점점 크게 연주해야 하는 크레셴도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이러한 아이들의 공통점은 '듣기'가 안된다는 것이다.
듣기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은
<음악교육? 집에서 '이것'부터 하자>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gloria-seungju/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