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규칙이 나를 괴롭힐때
2024년 5월. 오후 반차를 내고 아내와 함께 울산 처갓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나는 조수석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말고 문득 아내에게 입을 열었다.
“나 요즘 차 번호판 모으고 있어.”
“응?”
“그… 똑같은 숫자로 된 거 있잖아. 1111, 2222 이런 거. 지금까지 네개 정도 모은 것 같아. 근데 한가지 숫자로만 구성된 번호판을 올려치기하다보니까, 그 외의 차번호들은 좀 구린 차처럼 느껴지네”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말을 들었다.
“흠… 재미로 하는 거지?”
“응. 뭐, 그냥 기획 블로그 같은 거 써보려고.”
“그럼 됐지.”
이해받았다고 하기엔 애매했고, 무시당했다고 하기엔 그보단 따뜻했다. 나는 그 반응에 묘한 위로를 느꼈다. 이때의 나는 번호판을 평가하고 내 나름의 등급을 매기는데 미쳐있었다. 지금까지 4개를 모았으니 6개만 모으면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머지 5개는 대체 언제 모으냐는 생각이 들어서 들뜨면서도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조용한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중에 내 시선은 늘 그렇듯 앞차의 번호판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마치 무슨 연출이라도 된 것처럼, 한 대의 차량이 내 차선 앞으로 쓱 들어왔다.
회색 쌍용 칸.
그리고 그 번호판:
6666.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걸… 지금 이 타이밍에?’
내가 운전 중이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저기, 지금 내 앞에 있는 차 번호 좀 찍어줄 수 있어?”
“왜?”
“저거, 6666이야. 내가 지금 모으는 거 중 하나야.”
아내는 함께 기뻐하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줬다.
찰칵.
여섯 번째 수집.
6666을 만나기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에는 스트레이트로 된 로열넘버는 고급차량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해당 번호판을 받기위해서는 브로커를 활용해야 하는걸까? 하며 대한민국 행정업무에 대해 괜한 불신이 생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6666은 외제차도 아닌 쌍용자동차에서 나온 칸 이었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사고싶어했던 멋진차 이지만, 내 마음속에 강하게 자라버린 편견적 기준에는 한참 못미치는 차량 밸류였다. 그런데, 스트레이트 번호판은 고급차 전용이다-라는건 누가 그런걸 정한거지?
나였다.
이 모든 판단은 내가 만들어낸 기준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최소 독3사 이상에만 스트레이트 번호판이 나가야해!’라고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내 안에서 등급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고급차에만 어울리는 번호라는 생각과, 로얄넘버는 고급차에만 붙는다는 내 가설이 회색 쌍용 칸 앞에서 무너졌다.
오랜만에 한자리수 차량을 만난 '그날의 나'는 이미 하루의 할당량을 충분히 충족했다. 하지만 혹시 우연한 기회에 울산이라는 새로운 지역에서는 더 쉽게 번호판 수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강아지가 길거리 산책하듯이 킁킁거리며 주차된 차들의 번호를 보며 산책하고 있엇다.
그러다가 또 만난 6666.
빨간색 코나, 다소 낡은 차였다. 햇빛 바랜 도장에 약간의 흠집까지 있었고 주차라인도 삐뚤게 선, 아주 평범한 차였다.
“진짜? 오늘만 두 번째 6666이라고?”
처음엔 반가움보다 당황스러움이 컸다. 내 안의 로얄넘버 기준이 두 번 연속 부서졌다. 브랜드도 평범, 차량 상태도 중간 이하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주차장에서 아무렇게나 서 있는 상태이다. 내가 여태 상상하던 ‘로얄넘버의 아우라’는 이 순간 허무하게 날아갔다.
‘그럼… 대체 로얄넘버는 뭘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과연 내가 직접 모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경부고속도로에서 건진 회색 쌍용 칸 6666 차량의 사진은 챙겼지만, 내가 직접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괴롭혔다.
‘눈으로 직접 봤으면 된 거 아닌가?’
‘하지만 내 손으로 찍은 게 아니잖아.’
자기 합리화와 불안이 내 마음속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이 격렬하게 논쟁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겠지만, 내가 올린 기획 블로그를 가지고 내가 청문회에서 질문을 받는 상상을 해보았다. 억지와 깍아내림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누군가 내가 올리는 블로그를 보고 폄하하고 삿대질하며,
— "이 6666, 직접 찍으셨나요?"
— "이 사진, 인터넷에서 가져온 거 아닙니까?"
— "블로그 내용, 전부 본인이 수집한 거 맞아요?"
라는식의 파괴적 지적질을 당하면 속수무책일꺼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내 카메라로 찍은게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눈으로 봤고 당시의 스토리를 지금처럼 풀어낼수 있다면 내가 모은 번호판이라는 기준을 가져야겠다 싶었다. 셔터를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보다 그 순간을 '내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마치 서사를 써내려갈수 있다면, 일종의 특허권 보유자처럼 그 청문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절반을 모았다.
9999, 2222, 1111, 4444, 6666.
절반을 향한 집착은,
절반 이후를 향한 부담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은 건 3333, 5555, 7777, 8888.
특히 7777, 8888은 진짜 어렵겠다…’
'7777과 8888은 엄청나게 고급차량일까?'
그 숫자들은 어떤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도로 위를 아무리 훑어봐도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는 이런 질문에 스스로 갇혔다.
“내가 만든 규칙에 내가 갇힌 걸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내가 원한 거잖아.”
내가 만든 세계,
내가 정한 규칙,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리는 나.
수집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