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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사이

by 공대오빠

철로 된 장갑을 끼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분 단위로 밀려오는 닭 뼈를 발라내느라 온종일 힘을 주었더니, 퇴근하고 나면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이렇게 급여도 괜찮고 쉬는 시간도 잘 지켜주는 큰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힘들다고 투덜대는 내가, 30년 넘게 더 열악한 환경에서 평생을 일해 온 부모님을 떠올리면 믿기지가 않았다. 게다가 지금도 최저시급을 받으며 버티고 계신 걸 생각하면 부모란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미안했다.


호주에 온 지 1년이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병원비를 대느라 계속 빚에 허덕였고, 영어 실력도 그다지 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온 이상 여기에서 대학에 다시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아직 시도조차 못했다. 이렇게 되돌아간다면 한국에서의 삶이 여기 오기 전보다 나아질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잉햄 6개월 근무를 마치고, 현욱이와 기용이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세컨드 비자를 신청해 1년 더 머물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일자리를 다시 찾아야 했다. 불안한 마음에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시내로 나가 우유가 듬뿍 들어간 편의점 1달러 짜리 따뜻한 라떼를 사서 설탕을 듬뿍 뿌리고는 홀짝이며 아침을 대신했다.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멀리 있는 공장단지를 돌아다니며 무작정 인사담당자를 만나러 왔다며 경비실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주말에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 엉터리 주문을 외우며 내가 있었어야 할 퀸즐랜드 대학교(UQ)로 캠퍼스 구경을 가곤 했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을 둘러보며 여기서 다시 공부를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그래, 나는 화장품 관련 마케팅 업무를 하고 싶었지!


그렇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5개년 계획을 하나 둘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A Five-Year Plan for Jiwoon's Growth
(지운이의 성장 5개년 계획)

■ My Aim in Life: To be independent and helpful to somebody
(내 인생의 목표: 독립적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되기)
- Aspiration: Marketer, Author(Motivator)
(지향점: 마케터, 작가(동기부여가)

■ Key Words: Customer + Cosmetics + Marketing + Psychology + Motivation
(핵심 키워드: 고객 + 화장품 + 마케팅 + 심리학 + 동기부여

...(이하 생략)

그래, 나는 심리와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화장품은 가장 선호하는 업종이고 이러한 나의 삶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삶에 동기를 불어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 바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관련된 일을 구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호주에는 파머시(Pharmacy)가 정말 곳곳에 많다. 다. 약국 겸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등을 취급하는 이 매장은 한국의 올리브영과 비슷한 곳으로 천연성분을 기반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회사와 제품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당장 근처 스토어를 돌며 천연화장품 뒷면 사진을 모두 찍었다.



제품에 표시된 회사 이메일 주소를 수집하고, 나와있지 않는 경우 각 회사의 웹사이트를 찾아가 채용 공고나 지원 가능한 메일 주소를 확인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한 뒤, 내 커리어와 아모레퍼시픽 고객연구원 활동, 화장품 상품기획 경험을 기반으로 메일을 작성했다. 그리고 본문 마지막에는 한국의 화장품 시장 동향, 귀사의 천연 화장품이 아시아 시장에 새로운 제품 라인으로 진출해야 하는 이유 등을 영문으로 정리해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대부분은 답장조차 없었고, 몇몇 대기업에서는 지원에 감사하다며 추후 요건에 맞는 직무가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는 형식적인 자동 메일을 보낼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만 죽이다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 당장 현실을 살아내야겠지. 그렇지만 이력서를 직접 들고 다니며 제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만나주지도 않는데 계속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는 이력서를 출력해 우편으로 보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시내 근처 차이나타운에 있는 파스타 공장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적힌 주소를 따라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마치 우리나라의 가로수길처럼 생긴 거리를 지나 비싼 외제차들이 줄지어 있는 조용한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공장이었다.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온 가족이 운영하는 곳으로 보였다. 공장 입구에는 갓 만들어진 파스타 면과 라자냐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도 함께 있었다.


공장 대문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는지, ‘일자리가 없으니 제발 이력서를 갖고 들어오지 마세요!’ 라는 안내문이 여러 나라 언어로 적혀 있었다. 심지어 한국어로도… 사람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우편으로 보낸 것이 먹혔던 것이다.


공장 주인 할머니는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한국에서 공과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나를 ‘엔지니어’라고 부르며 똑똑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면접 결과는 조건부 합격이었다. 1주일 시간을 줄 테니 첫 출근 때까지 브로셔에 있는 모든 파스타 면 종류와 이름을 외워오라고 했다.


태어나서 먹어 본 파스타라고는 토마토와 크림, 빵에 든 빠네가 전부인데;; 이건 영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아닌 듯한 이름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사진도 없는 텍스트로 된 이름을 수십 개 외우라니, 인생 참 쉽지 않더이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먹고살려면 해내야지!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구글로 하나하나 검색해 가며 이름과 사진을 전부 외웠다.


며칠 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맞춰 공장에 도착했다. 주인집 딸인 도나(Donna)라는 인사 담당자가 서류를 잔뜩 들고 나왔다. 그녀는 유튜브와 방송 활동을 통해 가게를 알리느라 열심히 뛰는 미녀였다. 영상에서 미리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예뻤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크했고 잘 웃지도 않아 긴장이 됐다.


공장은 규모가 작은데다 입사자가 나 혼자라 대충 할 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서류 뭉치와 실습용 박스까지 가져와서는 1:1로 매우 꼼꼼하게 교육을 진행해 주었다. 허리를 다치지 않게 물건을 드는 방법부터 손 씻는 법까지 모든 안전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알아 들었으며, 그날따라 나의 질문도 막힘없이 잘 나왔다. 다행히도 마지막 관문인 파스타 면 종류 테스트는 하지 않았다.


교육이 끝날쯤, 도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며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 9시까지 출근을 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다만, 내일 만나게 될 직속 상사가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바로 잘릴 수도 있겠ㅈ만, 그런 일은 없길 바란다며 윙크로 마쳤다.


내가 배정된 파트는 공장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면 이를 급속 냉동창고로 옮기고 포장하는 업무였다. 이 파트에는 우락부락한 민머리 매니저 맥스(Max)와 나 둘 뿐이었다. 피자나 파스타 면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박스 단위로 포장된 제품을 팔레트에 쌓아 올리고 지게차로 옮겨야 하는 일이니다 보니 체력 소모가 컸다. 맥스는 주로 지게차를 운전하거나 전체적인 재고 관리를 했고, 나는 면허가 없으니 박스를 쌓고 쓰러지지 않게 랩으로 감싸거나, 직접 끄는 소형 수레 지게차를 이용해 갓 나온 상품을 날랐다.


첫날은 몇 시간만 일하고는 퇴근 시키더니, 그 후 며칠 동안 연락 없다. 공장이 규모가 작아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필요할 때만 일을 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할 기회가 생기면 성실히 일했다. 심지어 공장주 아들은 이사짐을 옮기거나 낡은 가구를 해머로 부수는 일과 같은 본 업무와 상관없이 시키기도 했지만, 그냥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잘 해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맥스의 업무 스타일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내가 작성한 재고 숫자를 그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특히 숫자 2,4,7 은 정말 나와 다르게 쓰더라. 그래서 그의 필기체에 맞춰 숫자 쓰는 방식을 바꾸었다. 또 함께 일하며 잡담을 하게 될 때면, 그가 궁금해하는 대학 생활, 북한 이야기, 한국의 건강 전통 음식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조금씩 맥스는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루는 수레용 지게차를 잘못 끌다가 냉동창고 문에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주인이 뛰어오더니, 엄청나게 화를 냈다. 나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지만, 그 장면을 본 맥스가 일을 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며 주인 아들에게 오히려 화를 냈다.


- Ridiculous!


맥스가 화를 내는 것도 처음 보지만, 저 단어도 처음 듣기에 너무 궁금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 이후로도 맥스는 나를 많이 배려해 주었다. 일이 없어도 사소한 일을 만들어서라도 내가 계속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파스타 공장은 쉬는 날이 잦았고, 근무 시간도 짧았다. 그렇게는 생활비를 충당하기는커녕 학비를 모을 수도 없기에 저녁에는 오피스와 식당을 돌며 야간 청소를 했다. 주말에도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싶어 RSA*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RSA(Responsible Service of Alcohol): 주류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교육 과정을 완료한 후 취득할 수 있는 인증 자격


정말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찾아서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교직원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을 계속해야 했고, 미래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주∙야간으로 일만 하고 있는 지금의 생활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장 예쁠 나이에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타국에 홀로 버티고 있는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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