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에세이
걱정이 많던 날이 있었다.
눈뜨자마자 오늘 할 일을 걱정했고,
버스를 타며 늦을까 걱정했고,
출근길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가 올까 걱정했다.
누군가에게 전할 말을 망설이며,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고,
회의 시간엔 엉뚱한 말은 하지 않을까,
퇴근 후엔 아이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엔
내일의 피로까지 미리 걱정하며 눈을 감았다.
그 많은 걱정들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걱정은,
어김없이 또 다른 걱정을 데려왔다.
하루는 엄마가 옷 사이즈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입어 봐, 안 맞으면 그때 고민해도 되잖아.'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입어보지도 않은 인생을 두고 걱정부터 한다.
해보지도 않은 일,
가보지도 않은 길,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불러내
온 마음을 다해 그쪽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남편은 엉뚱하게도
세상의 멸망을 걱정하곤 했다.
외계인의 침공이나 태양 폭발 같은,
말 그대로 '우주급 걱정'.
그의 말대로 외계인이 침공한다면,
그땐 걱정보다 도망가느라 바쁠 텐데도 말이다.
처음엔 우스워 보였던 그의 걱정이
어느 날 문득, 특별히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작은 현실을 붙잡고,
그는 거대한 상상을 붙잡고 있었을 뿐.
결국 우리는
지금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서로 각기 다른 크기의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걱정은 대개,
당장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할 수 있는 일마저 종종 망치고 만다.
아이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시험 결과를 걱정하고,
어른들은 아직 받지도 않은 건강검진 결과를 걱정하고,
연인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이별을 걱정하다 지금의 마음을 먼저 다친다.
걱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그 시기를 조용히 흘려보냈다면
저절로 사라질 일조차
우리는 굳이 붙잡아 하루치의 에너지를 몽땅 쏟아버린다.
결국 걱정과 불안은
입안에 남은 쓴맛처럼 온종일 우리 곁에 머문다.
누구도 가져가지 않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처럼.
굳이 그런 것을
가슴에 오래 담아둘 필요가 있을까.
오늘 할 말을 하고,
오늘 할 일을 하고,
오늘의 햇살을 느끼고,
오늘의 커피를 마시고,
오늘의 한 걸음을 소중히 여기며 걷는 일.
그 모든 것이
걱정보다 먼저 해야 할
'오늘의 숙제'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내가 감당하면 된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어제 밤새도록 걱정하던 내일일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오늘대로 조금은 가볍게 살아도 좋겠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뿐이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당신의 걱정이
조금은 덜 무거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