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마음은 물건처럼 살 수 없다.

힐링에세이

by 봄볕


하루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한 가족이 식사를 하던 중,

아이가 들고 있던 유리잔이 그만 손에서 미끄러졌다.

잔은 산산조각이 났고,

눈치를 살피던 엄마의 표정도 함께 일그러졌다.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왜 그렇게 덜렁대!"

엄마의 말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 가족의 식사는 한순간에 엉망이 되었다.

아이도, 엄마도 위로받지 못한 식사.

그 모습이 안타까워 오래도록 밥을 넘길 수 없었다.


살다 보면 어른들도 실수를 한다.

책상 끝에 둔 컵을 떨어뜨리고,

계란을 바닥에 쏟고,

주차하다 기둥에 차를 긁기도 한다.

마트에서 산 물건을 계산대에 두고 그냥 나오거나,

문자를 엉뚱한 사람에게 보내 당황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 정신 좀 봐."

"또 깜빡했네."

"정신 좀 차려야지."

스스로를 다그치고,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녀?"

"또 덜렁댄다니까."

"너 원래 그렇잖아."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으며

조용히 상처받기도 한다.

이렇듯 실수는 조심하지 않아서 생기는 거고,

한 번쯤은 혼나야 마땅한 일처럼 여겨진다.


다행히, 나의 엄마는 달랐다.

어릴 적, 그릇을 깨거나 물건을 떨어뜨려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엄마의 혼수였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가 잃어버렸을 때조차도.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놀란 눈으로 달려오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죄송해요."하고 울먹이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송할 것 없어. 너만 다치지 않으면 돼.

이런건 다시 사면 되지만, 너는 아니잖아."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늘 나를 먼저 챙기셨다.

그 말은 어릴 적에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도

늘 귀하고 따뜻하게 남아 있다.


엄마가 된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잇는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흘렸을 때, 떨어뜨렸을 때,

나는 다그치지 않는다.


"괜찮아. 엄마도 자주 그래."

그 말을 먼저 해준다.

무언가가 깨졌을 땐,

"어디 다친 데 없어?"

그 말을 먼저 건넨다.


큰 아이가 3학년 때,

앞니가 삐뚫어 교정을 시작했는데

고가의 장치를 변기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변기가 막혀 통째로 뜯어야 하는 큰 공사였지만

그때도 나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핸드폰을

하교길에 산산이 깨뜨리고 온 적도 있었다.

그때도 나는 그저 말했다.

"조심해야 해. 소중히 다뤘어야지."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주변에서는 왜 따끔하게 혼내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저 웃었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굳이 아이의 마음까지 찌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대인배라서가 아니라,

그저, 나도 실수하며 사는 사람이니까.

아이도 나처럼,

살면서 한 번쯤은 저지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실수를 한 것뿐이니까.


아이는 그런 내 말을

조근조근 다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느 날, 둘째의 친구 엄마가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솜사탕을 사 먹였던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친구가 솜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때 친구 엄마는

"왜 울어? 울지 마."하며 아이를 다그쳤고,

그 옆에 있던 우리 첫째는 친구를 다독이며

그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안 그래요. 괜찮다고 해줘요.

다시 사줄 테니까 울지 말라고, 속상했겠다며 달래줘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가만히 울컥했다.

엄마에게서 받았던 그 다정함이 우리 아이에게로,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 사실만 알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실수를 조금은 더 너그럽게 볼 수 있다.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만 더 부드러워진다면,

그들의 마음이 다칠 일은 없다.


내가 건넨 따뜻함은 그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나는 귀한 존재였구나.'

그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새겨질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번,

진심 어린 다정함을 받아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 마음을 내밀 수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위로가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누군가의 울음을 닦아주는 손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실수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그사람이 다치진 않았는지,

그리고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지다.


사람을 진짜로 다치게 하는 건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실수를 마주하는 말투와 태도일지도 모른다.


당신만은, 실수 앞에서

누군가의 '괜찮아'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말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말이, 사람보다

늦게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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