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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역사 -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1)

by 철가면

1. 들어가며


필자가 이 글을 쓰는 8월은 역사 논란으로 매우 시끄럽습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의 임명으로 친일논란부터 뉴라이트, 이승만, 그리고 일제에 의한 근대화론까지 수많은 역사적 논점의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다르게 평가하면 친일 매국노라 부르며 상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토론이 사라진 지 오래이며, 국민들 또한 이런 정치권의 행보에 염증을 내고 결국은 정치를 외면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무작정 극단적으로 비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무조건 친일이라 매도하는 그들도 극단적 관점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요. 또한 2025년에는 영화 하얼빈이 개봉되었습니다. 필자는 영화 하얼빈에 대한 우려와 리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영화 '하얼빈'속 민족주의 사관, 역시나....- https://brunch.co.kr/@6dc796cb17164ec/10


또한 이 글을 검토하고 검수하는 2025년 2월은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의 대한 탄핵, 그리고 탄핵의 반대와 찬성에 대한 대결로 몹시 혼란스러운 정국입니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한쪽이 끝장이 나야만 하는 광기의 시대입니다.


해서 이번 주제는 굉장히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인물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오직 우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안중근 의사의 의기로운 하얼빈 의거로 대한제국을 집어삼키고 있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그 명운을 다하고 맙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의로운 의거와 나라와 역사 앞에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그 목숨을 다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지 않는 이 가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있어서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한 조선을 차례차례 집어삼키고는 을사늑약을 체결,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으며, 종국에는 이 나라를 병합하는 것에 있어서 일등의 공을 세웁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악인입니다. 그러나 또 이 두 인물만큼 역사의 상대성을 잘 표현해 내는 인물들도 없습니다.


아마도 이번 글을 보면서 특히나 감정에 치우친 비판이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글은 결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비하하거나 이토 히로부미를 찬양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2.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이란


우리 역사에서 일본에게 주권을 잃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36년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치욕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일제 치하 36년, 더 나아가서는 일본과의 통상수교를 체결한 1875년 강화도 조약 이후 70년 동안의 우리의 역사는 일본에게 맞서는 투쟁과 실패의 역사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우린 그들에게 수많은 자원과 인력을 바쳐야만 했으며, 징용과 징병, 위안부와 같은 비인간적인 행태가 자행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오욕과 치욕의 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복 이후 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 앞에서, 대한민국은 냉전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미국과 함께 일본을 최우방으로 여겨야 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불편함과 껄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욕적 협약이라며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협약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한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가깝지만 먼 이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사와 중세, 근세의 역사에서도 일본은 우리에게 참 많은 고통과 아픔을 선사한 민족입니다. 흔히 해적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는 왜구는 신라시대부터 숱하게 우리를 괴롭혀왔습니다. 그뿐입니까. 고려 후기는 말 그대로 전 국토가 왜구에 의해 유린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외적을 무찌르며 국민적 영웅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힘을 기른 신흥 군벌 세력이던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 계기에는 왜구가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역사 속 국가들에게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으며, 그들이 약탈해 간 인적, 물적 자원은 일본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나 여말선초의 왜구는 악랄하게 한반도의 해안가를 노략질했으며, 심지어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고려를 유린했을 뿐 아니라, 조선 태종의 대마도 정벌 이후에도 세견선 문제로 끊임없이 조선을 괴롭혔습니다. 그뿐입니까.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일으키며 조선의 역사와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바꾸는 변곡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조선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이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의 성공과 함께 조선을 병합,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의 수탈을 통해 세계열강에 당당히 입성하고, 아시아 전역에 맹위를 떨치고 더 나아가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과 1:1 대결을 벌인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거기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맞은 두 방의 원자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의 산업을 다시 일으켜 준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극에 달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많이 희석되었지만, 여전히 일본은 져서는 안 되는 국가, 뒤처지면 안 되는 이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과 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은 애증의 대상인 것입니다. 특히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인들이 대한민국 땅을 밟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라며 입국을 불허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당시 대표팀 회고에 따르면 일본에 지는 경우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할 만큼 일본에 대한 적의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광복이 된 지 70년이 지난 현재도 일본에게 패하는 경우 여론에 뭇매를 맞을 만큼 일본은 우리에게는 숙명의 라이벌이자 이겨야 하고 지면 안 되는 대상인 것입니다.


3. 역사의 상대성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역사성에 대해서 간단히 다뤄보았습니다. 특히 한국이 일본에 느끼는 감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독자 분들께 드리고 싶은 질문은 과연 일본이라고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듯, 일본 역시도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고대시대부터 해양세력이던 일본이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며 필요한 곳이 바로 한반도였습니다. 정지, 문화, 예술, 그 어느 것 하나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는 일본으로 바로 흘러들어 가기 어려웠습니다. 각종 역사서에서도 일본은 신비로운 미지의 나라였습니다. 그만큼 제한되고 미지의 세계가 바로 일본인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에게 있어서 대륙으로의 진출은 언제나 그리던 꿈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직접적으로 대륙과 소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한반도였습니다. 그리고 대륙 진출 이외에도 한반도는 일본에게 있어서 안정적인 인력 및 물자의 약탈처였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은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왔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고 싶어 하듯, 일본 역시도 우리를 이기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지정학적 위치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숙명과 다름없습니다. 교통이 발달한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준으로 살펴보았을 때, 섬나라인 일본이 더 큰 세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교두보는 한반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한반도로의 진출 시도는 번번이 막힙니다. 고대 시절 신라로 침공한 왜구를 광개토왕이 쓸어버렸다는 기록과 함께, 숱한 왜구의 노략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견선 문제로 번번이 문제를 일으키다가 발생한 을묘왜변 등의 상황을 보면, 한반도는 일본에게 있어서 하나의 젖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다양한 원인에 대한 연구와 설이 있지만, 해양세력인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여 대륙세력으로 발돋움하려고 시도했다는 설은 유명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일본은 우리를 무한정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이들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해양세력인 일본이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교두보인 것입니다. 이렇듯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만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입장에서 진지한 고찰을 해보게 된다면, 보이지 않던 진실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중근이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위한 의지를 보여준 영웅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룩한 영웅 이토를 죽인 테러범일 뿐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이토는 국권을 박탈당하게 한 원흉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이토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구국의 영웅입니다.


이처럼 역사를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평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한정 이토를 옹호하고 안중근을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흔히 몇몇 정치인들과 극단적 유튜버들이 거품을 무는 부분들 중 하나가 바로 일본에 의한 근대화와 친일에 대한 논란입니다. 한반도를 수탈하기 위해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그마저도 본인들의 필요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한반도에 악랄한 식민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광복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종 사회 문제와 일제 지배치하의 대한 잔재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각종 철도와 근대화 시설을 들여오고 각종 근대화적 문명의 기기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해하실 수 있는데, 일제의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지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 임명 논란, 그리고 김문수 노동부장관 임명 청문회에서 발생했던 논란 중, 당시 한반도인이 일본의 국민이었다고 말한 부분들 역시도 논란이 있을 수는 있으나 액면 그대로를 평가했을 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당시 주권을 잃은 우리 민족은 KOREA가 아닌 JAPAN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는 우리가 당시 주권을 잃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적인 부분에만 반응하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국적 논란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특정 세력들이 그토록 입에 거품을 물고 저주하는 이승만은 각종 서류에서 스스로를 KOREA로 기록하고 다녔다는 부분 역시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런 부분은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면서 사실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비난을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성숙한 자세는 “우리가 비록 일본의 지배의 침략으로 인해 잠시간 ‘일본’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 민족의 정신과 근본은 '한국인'이었으며, 일제의 악랄한 통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결국은 독립을 이루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의 기개와 의지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정도가 가장 적합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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