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미국 시골 처녀, 캐리
지금부터 현대다, 하고 시작을 알리는 때가 바로 20세기, 즉 1900년도부터이다.
마치 밀레니엄(2000년) 베이비가 막 태어나 첫울음을 터트리듯이 눈부신 산업 발전도 이때부터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영국의 산업혁명은 공장 굴뚝에 연기가 났던 시점부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1830년도 즈음까지를 1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나는 산업 혁명, 하면 중학교 때 과학 교과서에 실렸던 흰 나방, 검은 나방사진이 떠오른다.
런던 도심의 흰 나방이 공장 굴뚝에서 뿜어대는 연기 때문에 검은 나방이 숫자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그리고 이것은 진화론에 따른, 흰 나방의 환경 적응을 위한 변이였다는 것도...
나방뿐이 아니었다. 공장의 굴뚝이 얼마나 많이 생겼으면 이것을 청소하는 청소부도 많았다. 특히 5-6세 정도 되는 남아들이 청소부로 제일 인기가 있었는데, 굴뚝 안을 타고 내려가며 그을음을 벗겨내기 수월한, 자그마한 몸집 때문이라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야기다.
오죽했으면 윌리엄 블레이크(영국 시인)가 굴뚝 청소부(The Chimney Sweeper)라는 시를 썼을까...
작고 어린 녹찻잎을 따기 위해 어린아이의 자그마한 손이 동원되고 커피 생산을 위한 수작업에 아동 노동력이 착취되는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현실은 별반차이가 없다. 공정무역 커피니 뭐니, 또 일부 국가에서는 어린이 노동을 제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 인구가 어마무지하게 처마시는 수요를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1차 산업혁명을 지나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1900년도, 위에서 말한 20세기부터 문예사조를 보통 자연주의라고 일컫는데, 이때 미국의 시골은 전통이 있었고 자연, 그리고 소박한 삶의 가치가 전부인 곳이었다.
산업의 발달로 많은 공장이 생기자 일자리는 넘쳐났고 도시 인구로 그 숫자가 채워지지 않았다. 미국 시골 구석구석에서 살던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났다. 꿈을 찾아 돈을 좇아...
이 시기 미국 자연주의 소설에서는 시골 처녀가, 특히 캐리라는 이름의, 순수, 깨끗함, 밝음의 이미지로 자주 등장한다.
그것들의 공통된 줄거리를 대강 정리해 보면,
~캐리라는 스물도 안된 여자가 도시의 공장으로 일자리를 얻으러 살던 마을을 떠난다. 캐리는 도시의 방직공장에서 힘들게 일하지만 버는 돈은 뻔하고, 어느 날 도시남자 사기꾼에게 꾀여 순정을 바치지만... 남자는 떠나고 결국 캐리는 거리의 여자로 나서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캐리는 몸과 마음의 상처만 떠안은 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캐리처럼 자아, 의지와 상관없이 산업 발달, 과학발전이 만들어낸 환경과 본능에 지배되는 사람들... 그래서 맞닥뜨리게 된 운명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갈등과 변화를 과학적인 타당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Naturalism)다.
미국 자연주의 대표작으로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의 소설,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1925년)이 있다. 1906년 실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거의 그대로 담아 쓴 소설로, 몹시 가난했던 드라이저는 개인의 불행은 사회환경 탓이라며 미국사회를 비판했다.
이 소설은 훗날 영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 un,1951년)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는데, 세기의 미모 여배우, 엘리자베스테일러가 당시 17세의 나이로 출연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TV 주말 연속극 젊은이의 양지(1995년)가 방영되었는데. 80년대 광산촌 배경이지만 살인 사건 말고는 상황이나 흐름, 주제면에 있어서 원작과 많이 다르지 않다. 하희라. 이종원, 전도연, 등 당시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였다. 또 훨씬 이전인 1978년도에 주말 드라마, 청춘의 덫도 젊은이의 양지와 별다르지 않다. 사실 한 가난하고 젊은 남자가 부잣집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진 후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연인을 버리는 일은 드라마든 영화든 시대와 상관없이 흔해빠진 단골 소재이다.
이렇게 유럽이나 미국의 문예사조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시기가 조금씩 밀린 것은 우리의 산업화나 서구문화 발달 속도가 수십 년씩 느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식민지 역사가 있었고 전통 방식에 대한 민족성이 다른 나라보다 더 깊은 이유도 있다.
여기서 사실주의, 자연주의, 둘 다 낭만주의와는 반대 성향이기 때문에 낭만주의와 다시 한번 비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유독 드라마틱(dramatic)하게 말하는 부류들이 가끔 있는데 듣다 보면 훨씬 더 집중하게 되고 재미도 있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이다.
다 싸잡아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학창 시절 음대 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 “야, 너 거기 쌈밥집 가봤어? 종로 2가의 어디 어딘데... 있지, 된장찌개가 다 먹을 때까지 보글보글 끓어... 쌈 종류도 엄청 많고...” 나는 그 말에 혹 해서 수업 끝나고 어린 후배들을 꼬셔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하지만 살짝 따뜻하면 좋았을 찐 양배추는 방금 냉장고에서 나온 듯 차가웠고, 몇 가지 안 돼 보이는 쌈채소들은 씻고 나서 충분히 털지 않았는지 물이 질질 흘렀다. 계속 끓고 있어야 할 된장찌개는 보이지 않았고 쌈장 하나만 탁자에 놓여 있었다.
후배들 앞에서 멋쩍어 주인에게 물어보자, “더워서 요새 안 끓여요, 겨울에만 찌개가 나가는데... ”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나 빼고 같이 간 3명 중 한 명이 볼맨소리로 겨우 한마디 했다. “언니, 이건 좀 아닌데... 잘못 선택한 것 같아요... ”
하지만 내 친구의 눈에는 찌개가 분명 끓고 있는 게 보였을 것이다. 정말 맛있었고, 그때 그 기분 좋은 감정을 그렇게 부풀려 표현한 것이다. 이게 낭만주의다. 아름다운 과장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하지만 곧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전쟁을 겪었고, 사람들의 삶은 이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후반, 상상력이 바탕인 낭만주의의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 이것의 끝없는, 지겨운 예찬에 물릴 대로 물려버려 그만 반기를 들고 나와버린 것이 사실주의다.
객관적으로 삶을 관찰하고 사회를 비판하려는 사실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사실주의에서 심화된 파생물로 자연주의가 나왔고, 실제 많은 사실주의 작가들이 자연주의 문학을 이어갔다.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등장한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은 개인의 상상력이 아니라 시대의 관습, 인종, 시대적 상황,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는 환경 결정론을 가지고 등장했다.
또한 Darwin의 진화론과 유전의 법칙, 등이 자연주의를 지향하게 했고 위에서 예를 든 캐리가 왜 타락했는지, 그 진실을, 과학적 병법에 접근하여 분석하려고 애썼다.
다시 정리하자면 사실주의는 객관적이고 감정이 없다. 일련의 사건들을 기술할 뿐이다.
여기에 더하기, 소설 속 주인공의 행동에는 환경이나 유전이 영향을 줬으며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자연주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연주의 작가로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 그리고 대표작가로 앞에서 얘기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 원작자,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가 있다.
이 중에서 프랭크 노리스의 대표작인 맥티그(McTeague)만 예를 들자면, 물질 숭배, 황금만능주의, 이로 인한 인간의 몰락, 파멸, 범죄,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또 이러한 내용들 때문에 20세기부터 확산된 라디오, 잡지, 텔레비전, 영화와 함께 편승되어 미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맥티그는 나중에 탐욕(Greed, 1924)이라는 제목으로 각색되어 영화로 제작되었다. 복권 당첨으로 일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는, 돈의 노예가 돼버린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옛날 무성영화이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게 남는, 게임의 법칙(1994년)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게 우리나라 영화라고? 이런 영화를 한국 작품으로도 볼 수가 있구나, ' 하며 감탄했다. 한국 누아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수작이라고 당시 많은 평론가들의 칭찬이 일색이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자연주의 문학은 어둡고 쾌락적이며 도덕적 타락, 등과 같은 극적인 요소, 일상에서 벗어난 충격적 사건, 자본주의에 따른 인간성 상실, 또 맹목적으로 물질만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를 그려내기 때문에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예전이나 지금도 이 사조를 선호하고 있고 따라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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