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비트2, 가 나올까?
한국 영화 비트(1997년)는 물질주의가 만들어낸 청소년의 비행문제를 소재로 했다, 고는 하지만 어느 시대이건 간에 물질주의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고 청소년 문제 역시 그러하다.
비트 영화는 허영만 작가의 원작 만화로 정우성, 고소영, 임창정이 출연했고 당시 이 영화의 파급은 대단했다.
정우성의 두 팔 벌리고 오토바이 타는 씬(scene) 하나로 대박 난 이 영화 때문에 밤만 되면 동네 중국집 배달원들이 오토바이를 죄다 끌고 나와 도로를 질주했다. 그 옛날, 아파트 단지별 상가 중국집 알바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내가 귀가 중에 몇 번을 봤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은색 철가방, 그 위에 쓰인 만리장성, 성원장, 쌍용각... 붉은 글씨가 그들의 소속을 알려주었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웃기면서도 슬펐다.
도로를 내달리던 순간만큼은 배달용 소형 오토바이도 그들에게는 멋진 스즈키나 혼다였을 것이고... 그 위에 탄 갓 스물 된 배달원 자신도 잠깐 동안은 정우성이었으리라.
'나에겐 꿈이 없어...(영화 속 정우성 대사)...'라고 중얼 중얼대며 말이다. 배달을 했던 안 했던 그때 좀 놀았던 불량한 청춘들의 추운 가슴을 영화 비트가 뜨겁게 적셔주었을 것이다.
영화 비트처럼 비트(Beat)는 기성 사회로부터 두들겨 맞았다, 또 재즈 리듬의 강력하고 제한 없는
박자(beat)의 의미이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앓으며 빈곤을 감수하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즉, 비트족은 앞서 10화에서 얘기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뒤를 이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청년층을 가리키며 이들을 패배한 세대라고도 부른다.
또 미국 현대 사회를 부정하고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거부한, 한마디로 아카데믹(Academic)한 문학을 반대하는, 방랑자적인 예술가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문학 창조는 퍼포먼스(performance), 즉 행위예술과 같았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은 195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반문화적 문학 운동으로 1960년대 히피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