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과 울화통의 경계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은 거래처 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쉬움과 궁금증이 드러나는 속사포 질문들.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거의 없어 그저 허허 웃음으로 답하였다.
"내가 버티랬잖아!! 아니 어디 좋은 데 가는 거야? 조차장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이팀장한테 그랬어. 우리 정말 이제 닭 튀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랑 우리 이팀장이랑은 나이가 많아서 이제 그만두면 닭이나 튀겨야해. 우리 조차장님은 뭐 여자니까 그만둬도 크게 뭐 그런 건 없겠다. 남편이 벌고 집에서 살림하면 되잖아."
아, 내가 남편과 자녀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가?
"저, 남편 없어요. 하하."
그냥 듣고 말지 그걸 굳이 고쳐 말하곤 곧 후회했다.
"아, 그랬어? 내가 왜 몰랐지? 아니 나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나봐. 그래. 그러면 더 훌훌 간편하고 얼마나 좋아. 나는 우리 애들 둘이나 있고, 애들 이제 다 크고 자기 할 일 잘 하니까 걱정없지만. 아무튼 조차장님은 다른 걱정 없이 혼자만 생각하면 되니까 얼마나 자유로워. 내가 한 번 놀러갈께, 어디 산다고 했지? 아~ 어린이대공원. 강동구!!(광진구인데!!) 알지 알지. 좋은 데 사는 구나. 나는 파주에 사니까. 어쨌거나 한 번 놀러갈께. 강동구로 나도 이사갈까? 근데 거기는 집들이 너무 오래되가지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구나.. 헛헛한 마음이 드는 순간, 주제가 달라졌다.
"아, 이제 정말 마음 놓고 편안하게 얘기할 사람이 없어. 다 그만두고. 진짜 일하는 사람들을 다들 그만두고 일 안 하는 사람들만 남네. 여기도 그래. 우리 회사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그만뒀어. (소근..) 김땡땡 씨라고 알지? 걔도 그만둬. 조차장도 그만두니까 뭐 말해도 되겠다. 우리 애들도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하긴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이랑 다르니까, 우리 회사가 여자들 다니기 좋거든. 아, 그나저나 진짜 조차장까지 그만두는구나. 진짜 이팀장이랑 내가 강동구로 한 번 갈께."
놀러오시지 않으시겠지만, 말씀이라도 감사했다.
악의없이 심기를 건드는 속 모르는 소리들이 벌써 따듯한 추억이 되었다.
곧 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다 사소한 일들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몇 분에게 전화가 연이어 왔다.
처지를 이해해주실 만한 또래 분들에게는 카톡을 보내 전화 받기가 곤란하다고 사정을 설명 드렸다.
하나같이 따뜻한 응원과 위로를 건네주었다.
오래 일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두 번째.
그 전에도 느꼈는데, 오래 일한 회사를 그만 둘 때 사장님과 임원분들과의 관계는 정말 최악이 된다. 그만두게 될 때까지의 스토리도 있겠지만, 그만두기로 결정이 되고 나서 그만두는 날까지 세상 얼마나 덧 없는 지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거래처 사장님들이나 담당자분들과는 애틋한 인사를 나눈다. 회사로 선물이 오기도 하고, 안부 인사들이 아낌없이 도착한다.
나는 그것이 참 슬프다고 생각을 했다.
지난 주, 우리 회사 사장님은 나를 카카오톡 차단을 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퇴사를 앞 둔 다른 회사 직원이 본인이 차단당했다고 하길래, 나도 한 번 확인해보았다가 알게 되었다. 그 전부터 차단을 하였는데 이제 알았는 지 모르겠지만, 그 기분이 상상하던 것과는 또 다르게 어지러웠다.
카카오톡 차단을 하면 송금표시가 없어진다고 한다. 퇴사 이야기와는 무관한 다른 직원에게는 이전 프로필 사진 그대로와 송금표시가 있었다. 그 직원과 나의 휴대폰을 번갈라 보며 웃었지만,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퇴사까지 앞으로 11일.
나는 마시멜로우다. 마시멜로우니까 괜찮다.
11일동안 이 주문이 나를 지켜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