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아카데미의 추억
매주 월요일이면 공부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조용히 나의 손을 잡으며 질문을 던진다.
“아~빠,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아?~”
“글~쎄~에?, 잘 모르겠는데, 무슨 날인데???”라고 짐짓 모른 체하면서 대답을 하면
“아이 참 아빠도~ 오늘 ‘정답입니다’ 하는 날이잖아~”라며 답답해하며 자신의 질문에 자기가 답을 한다.
아이가 말한 ‘정답입니다’는 우리말에 대한 지식을 다투는 퀴즈 프로그램인데, 출연자가 답을 맞힐 때마다 “정답입니다.”라고 경쾌하게 사회자가 외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인지 아이는 제목보다 사회자가 외치는 ‘정답입니다’로 항상 지칭했다.
…
사실 유치원 때만 해도 우리말 겨루기에 별 관심이 없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관심을 가진 게 어쩌면 내가 출전했던 퀴즈프로그램의 영상을 자랑삼아 아이에게 보여준 아빠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퀴즈를 보다가 소고기나 상품권이 걸린 문제라도 나오면 주먹을 불끈 쥐면서, “아빠, 우리가 저 문제는 꼭 맞추자”라며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가지고 퀴즈 아카데미에 출전했던 나의 옛 모습이 연상되어 절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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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대학생들에게 퀴즈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은 조금이라도 퀴즈에 관심을 둔 관심을 갖는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해외여행이라는 부상이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완전히 정착된 지금도 해외여행을 부상으로 주는 퀴즈대회라면 인기가 엄청날 것인데, 해외여행을 꿈도 꿀 수 없었던 80년대의 대학생들에게 퀴즈 아카데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평소 퀴즈에 대해 나름의 자신을 가지고 있던 나도 항상 출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늘 생각만 앞설 뿐 행동까지는 연결되지 않았던 내가 퀴즈 아카데미에 출전을 하게 된 것은 나와 달리 엄청난 추진력을 가졌던 친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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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우연히 친구의 집에서 같이 방송을 보고 있던 나는 무심코 한 마디를 던졌다.
“아휴, 같이 나갈 사람만 있으면 해외여행은 따놓은 건데..!?”
나의 말에 그 친구가 반응을 보였다.
“그럼 우리 같이 한 번 해외여행이나 가볼까?”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는 잘했지만 상식이 많지 않았던 친구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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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는 어느 날 손에 방송사의 스케줄을 들고 학교로 찾아왔고, 나와는 다르게 엄청난 추진력을 가지고 있던 친구의 행동에 얼결에 방송국까지 갔던 바로 그날 우리는 내친김이라며 예심까지 보았다.
예심 점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출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담당 PD는 우리에게 빨리 출전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기회다 싶었던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은 채 너무도 쉽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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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기본적인 퀴즈실력에 더해 매일 5대 일간지를 샅샅이 읽고 정리해야 한 데다, 한 분야를 정해놓고 공부해 온 성과를 비교하는 집중탐구나 파트너 간에 호흡이 중요한 본격예선까지 준비해야 했기에 결국 합숙을 결정했고, 며칠간 나는 친구의 집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
실제 촬영당일.
예선 첫 경기 너무도 자신감에 차 있던 나의 성급함으로 인해 70점이나 상대방보다 모자란 상태로 본격예선을 맞이했던 나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친구의 입만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답을 뱉은 결과 1개를 제외하고 다 맞혔는데, 그 기록은 퀴즈 아카데미가 끝날 때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본격예선을 끝낸 그 순간 나와 친구가 가졌던 마음이 딱 그랬다.
다행히 하늘이 우리를 도왔는지 우리가 얻은 점수를 확인한 이후 상대방은 초조한 나머지 실수를 거듭했고, 결국 우리가 이겼다.
어려웠던 예선이 지난 후 본선에서는 상대방을 압도했고, 결승에 진출한 우리 앞에는 3승을 도전하고 있는 팀과의 결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신은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팽팽하게 진행되던 결승전에서 우리가 앞서 갈 수 있는 순간 부저를 먼저 누른 나는 뻔한 답을 대답하려다 예선에서의 트릭을 기억해 한 번 꼬아서 대답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고, 이후로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부저 누르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눈앞에 다가왔던 우승을 놓치는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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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아카데미에 출전한 날 이후 한참 동안 아쉬움을 제대로 떨치지 못했는지 한동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포용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당시의 나는 너무도 젊은 피가 끓는 청춘이다 보니 더 오랜 기간 동안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하지만 최고로 인기 있던 프로그램에 출전했던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워낙에 유명한 방송이어서인지 우승을 못했음에도 방송에 노출되었다는 점 때문에 한동안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과사무실로는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온 팬레터가 가끔씩 등장했고, 우리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러 온 동문 후배들을 응원하러 나간 자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정도로 당시 그 방송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덕분에 젊은 시절 한 때는 자잘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같이 출연했던 친구의 추진력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TV를 보다 혼자서 과거의 추억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 것은 사회자를 흉내 낸 아이의 경쾌한 목소리였다.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