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시대는 저물어도...

인공지능의 충격적인 등장에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별사탕아빠

유독 아침잠이 많아서 주말이면 아이가 깨울 때까지 늦잠을 자던 내가 지난 토요일에는 일찍부터 집을 나서기 위해 서둘러야 했는데, 동호회에서 주관하는 바둑대회에 출전하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바둑도 잘 모르는 아이가 대회에 나가라고 나의 등을 밀었던 이유는 단순했는데, 한 해 전 출전했던 대회에서 부상으로 상품권을 받은 덕분에 원하던 것을 했던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런 아이의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작년에는 아빠가 십여 년 만에 처음 바둑돌을 잡아서 그런 거야, 금년에는 우승도 문제없어”라는 아내의 장담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작년 대회에 나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내 때문이었다.


우연히 바둑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사실을 아내에게 얘기했는데,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교류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아내의 적극적으로 권유로 참가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나와 달리 추진력이 좋아서 무슨 일이든 결정이 되면 거침이 없다.


지난 주말에도 분주하게 서두르는 아내 덕에 시간에 맞춰 서초동에 도착했고, 아내와 아이의 맹목적인 믿음과 응원덕분인지 우승을 했다.


대회가 끝난 후 바람대로 아쿠아리움(Aquarium)에 갔다가 바다사자 쇼까지 본 아이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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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바둑대회에 나간 것도 우연이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가전제품 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구로공단에 위치한 우리 연구소는 인원이 200명 정도로 가족적 분위기다보니 가을이면 가족들을 연구소에 초청해 연구소를 구경시켜주는 행사가 있었다.


유명한 강사의 강연이나 바비큐 파티 등 나쁜지 않은 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시들했던 나에게 여의도에서 열리는 그룹차원의 직원 바둑대회에나 가자던 입사동기의 제안은 솔깃했다. 점심으로 지급된 도시락을 해치우기 무섭게 기획실에 근무하던 동기와 함께 여의도로 향했다.



그룹 바둑대회를 주관하는 사람은 당시 회장의 친척이었고, 진행은 도전 5강의 한 명이었던 프로기사가 맡았는데, 가장 눈에 띈 사람은 갓 입단했음에도 그룹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정도로 뛰어난 기재를 보였던 소년 기사였다.


애초에 동기에 비해 실력이 떨어졌음에도 같은 급수로 신청을 했기에 나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 도리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지 처음으로 출전한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리고 그 날 내가 만났던 소년기사는 이후 세계 바둑계의 최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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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내가 처음 배운 것은 40년쯤 전인 1985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야간 자율학습을 도입했는데,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모아놓으면 열심히 공부할 것이란 것이 선생님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밤늦게까지 교실에 남아있게 되자 공부보다는 다른 궁리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는데, 자율학습 시간에 나와 짝이 된 친구도 그런 부류였다.


그 친구는 2학년 때부터 전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친구였는데, 따분한 자율학습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나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처음으로 배운 것이라 친구의 설명이 알 듯 말 듯 어려웠지만 두어가는 과정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다, 난해해 보이는 사활풀이의 묘미에 빠진 나는 순식간에 바둑의 매력으로 빠져들었다. 게다가 정해진 규율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 성격이었던지라 자율학습시간에 바둑을 둔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나에게 바둑은 낭만 그 자체였다.


대학시절 학과동기들은 수업하고 있는데 교실 창밖에 걸터앉아 교수님 몰래 바둑을 둔 적도 있었고, 당구장에서 바둑을 두다 강의를 빼먹거나 밤을 샐 정도였으니 말 그대로 도끼자루가 썩는 줄도 모르게 지냈던 것 같다.


인터넷 바둑이 유행하던 초창기, 프로기사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유명한 바둑동호회에 가입했고, 그 덕에 삼성화재배의 전야제가 열리는 연수원에 초대받아 세계적인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호사를 누렸고, 내가 시샵(Sysop)이 되어 운영하던 바둑동호회는 사이트에서 입에 오를 정도로 유명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둑동호회와 관련된 인연 때문에 중국에 간 것이 나의 첫 해외여행이고 보면, 바둑은 내게 신선한 일탈을 꿈꾸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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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둑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절박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싱글이었던 나는 혹여 있을지 모를 결혼과 육아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을 거듭했고, 제2의 인생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니던 직장생활을 접고 로스쿨에 진학할 결심을 했으니, 그 좋아하는 바둑과 거리를 두는 것도 당연해보였다.


하지만 이후 내가 진짜로 바둑을 잊고 산 것은 2016년 있었던 상상 못했던 일 때문이었다.


컴퓨터를 통해 바둑중계를 보고 있던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계 최고의 기사에게 승리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체스나 다른 게임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길 때에도 바둑만은 컴퓨터가 인간의 발끝에도 못 따라올 것이라는 내 믿음에도 균열이 생겼다.


게다가 그 날 인공지능에게 패배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바둑기사는 내가 난생 처음으로 나갔던 직원 바둑대회 때 눈여겨봤던 그 소년 기사였기에 더욱 가슴이 저며 들었다.


문득 그 날 내가 본 것은 바둑에서 낭만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업에 적응해야 했다. 이어진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에 의한 육아까지 숨 가쁘게 변하는 삶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바둑은 점점 나의 머릿속에서는 잊혀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나가서 바둑을 두다가 내가 바둑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를 그 동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둑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승부를 가르는 속성을 갖고 있다 보니 두는 사람도 대부분 승패에 연연하고, 이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바둑을 두기 시작할 때부터 승패에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상대방과 어울려 두다보면 상대방의 현재 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갑자기 오랜만에 그리운 친구를 불러 바둑이나 한 판 두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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