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기억의 단상(斷想)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는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신었던 실내화를 집으로 가지고 온다.
동시에 교육기관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저분해진 실내화를 깨끗하게 세탁한 후 월요일 날 보내달라는 담임선생이 보낸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같이 집에 돌아온 나는 아이의 샤워를 도운 후 실내화에 비누칠을 한 후 깨끗하게 세탁을 하는데, 그때마다 별로 때가 타지도 않는 신발을 매번 세탁해 오라는 당부를 빼먹지 않는 담임선생의 진심이 궁금할 때가 있다.
다행히 재질 자체가 세탁에 어렵지 않기에 혼자서 구시렁대다가도 ‘내가 어릴 적 신던 실내화가 아닌 게 어디야!’라는 위안과 함께 생각을 이내 고쳐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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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룩스라고 불리는 요즘 아이들이 신는 실내화는 가벼운 데다 사방으로 구멍까지 뚫려 냄새도 배지 않도록 발이 편할 수 있도록 기능적인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뿐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모양이나 색상 자체도 다양해진 데다 요즘 들어서는 크룩스에 장착할 수 있는 파츠라는 액세서리로 장식할 수도 있어서 아이들의 구매 욕구를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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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실내화는 있었다.
하얀색 천 재질로 만들어진 실내화는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모양이었기에 아이들은 실내화의 발등 부분 모양이 둥근 모양인지 세모인지를 가지고 더 좋은 모양이라고 우길 정도로 획일적인 디자인 때문에 가끔은 자기의 실내화를 찾지도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천이라서인지 때가 금방 탔고, 비가 와서 습기라도 있는 날씨가 이어지면 발 냄새가 신발에 배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교실 여기저기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더구나 지금과 달리 정부에서 산아정책을 추진해야 했을 정도로 아이들의 수가 많았던 시대여서인지 점심시간 운동장에서는 바글바글한 사람 때문에 생긴 먼지가 자욱했는데, 노는 시간이 아까웠던 아이들은 실내화를 신은 채 운동장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기에 대부분 아이들의 실내화는 하얀색이 아닌 얼룩덜룩한 색으로 보였다.
사정이 그랬음에도 당시에는 집에서 실내화를 세탁해 오는 경우는 드물다 보니 더러워진 실내화 때문에 나무로 된 복도는 금방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처럼 따로 학교 청소를 해주는 업체가 있지 않았던 당시 지저분한 복도청소는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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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왁스청소가 제일 싫었다.
내가 보기엔 그리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교실이나 복도에 왁스를 바른다고 오랜 시간 문질러대는 일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지저분한 환경에 노출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너무도 식상한 이유를 들어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씩 환경미화를 시켰는데, 우리들은 조를 이루어 먼저 교실과 복도를 쓸거나 닦아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복도에 왁스칠을 하게 되는데, 맨 앞에 있는 교실에서부터 저 뒤쪽 교실까지 아이들은 대여섯 명씩 줄줄이 자리를 잡고 쪼그려 엎드린 채, 마루에 광이 날 때까지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손걸레에 왁스를 묻혀 닦아야 했다.
제2차 베이비 붐 세대가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학급 인원은 보통 80명 정도였고,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 동네의 경우 기본적으로 10반 정도이다 보니 왁스 청소를 할 때면 육천 여명의 아이들이 떼를 지어 복도에 앉아있게 되는데,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든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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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스청소를 했던 일을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사건과 함께 기억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학년이 바뀌면서 처음 같은 반이 된 친구는 5학년 때까지 나와 다른 학교를 다녀서 잘 알지도 못한 사이인 데다 나와는 결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까지만 해도 짝이라고는 해도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었다.
학년이 바뀌면서 서로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들과 한 반을 이루는 이런 일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초등학생이었던 70년대 서울에서는 꽤나 흔한 일이었는데, 학교에서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의 수가 많아질 때마다 국가에서는 새로 학교를 지었고, 근방의 여러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내 신설학교를 채웠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고, 새로운 학교로 이동해 간 친구들은 새로운 교실에서 다시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6학년이 되면서 만난 친구와 사건이 벌어졌던 학교는 바로 그 일이 있기 한 해 전 겨울방학에 세워진 동네에서 제일 역사가 짧은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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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으로 올라가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환경미화를 이유로 교실 청소를 마친 우리는 나란히 복도에 쪼그려 앉아 걸레에 왁스를 바른 후 광을 내기 위해 힘을 주어 열심히 걸레를 문대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뒤에 있던 친구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지를 잡아당겼고, 그날따라 헐렁했던 바지는 순식간에 벗겨지는 바람에 화가 날대로 난 나는 친구와 주먹다짐을 시작했다.
학년 초부터 잘난 체하기도 한 데다 허세를 부리는 일도 많아서 시비가 많았던 그 친구와 달리 조용했던 내가 먼저 싸움을 거는 모습을 본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의 주먹다짐은 학창 시절 전체를 통틀어도 나에게는 유일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은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았던 친구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꽤 그 친구와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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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싸움을 벌이기 전에도 그 친구에 대한 소문들은 반에서 자주 오르내렸다.
“쟤네 아버지가 유명한 전축회사 사장이라 든데~”
“사립학교에 다니다 왔다던데”
이렇듯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나돌았던 이유는 평소 잘난척하는 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녀석이 친구들에게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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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 친구를 완전히 허풍쟁이로 믿게 된 계기는 당시 우리에게 제일 인기 있었던 TV방송에서 사회자로 활동하던 우리 또래 꼬마 여자 아이에 대해 그 친구의 자랑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당시 엄청나게 인기 있었던 어린이 신문에는 우리보다 한 살 어렸던 아역배우 Y의 사진이 나왔고, 그것을 보기 위해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 친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 Y랑 되게 친해, 걔네 아빠랑 우리 아빠랑 알고 지내서 가끔은 우리 집에 놀러도 와~”
여신처럼 예뻤던 아역배우에 대한 그 친구의 얘기를 믿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그 이후로 그 친구를 허풍쟁이로 단정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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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친구는 허풍쟁이가 아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그 친구의 집에 갔다가 친구가 Y와 같이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만난 아역스타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친구가 소개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제대로 말 한마디 건네지도 못한 채 고개인사만 꾸벅하고 부리나케 자리를 피했는데,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