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었을 때 이정표,
목표(目標)


3월의 다이어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간관리 도구를 제작하고 강의하는 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다이어리와 플래너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는 단연 연말과 연초입니다.

전체 판매량의 85% 이상이 이 짧은 시기에 집중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빳빳한 새 종이 위에 굳은 결심을 써 내려갑니다.

올해는 반드시 다르게 살겠다고.


그런데 그 다이어리, 꽃피는 3월이 되면 어디에 있을까요.

책상 구석에 먼지가 쌓여 있거나, 가방 깊숙한 곳에서 잊혀지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자책합니다. "내 의지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지만 목표와 실행 사이의 간격이 생기는 이유는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목표'라는 단어의 무게를 처음부터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도 한때 목표를 세웠습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코치가 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그 목표 하나를 붙들고 교육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난이 찾아왔고, 결국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생활을 위해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했던 그 시간들, 솔직히 말하면 목표 같은 건 꺼내 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목표는 저를 잊지 않았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지치고 무너진 날에도, 그 이정표는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제 마음을 노크했습니다.

아직 이 길이 있다고.


목표(目標)라는 단어를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목(目)은 눈의 형태를 본뜬 글자입니다. 단순한 시각 기관이 아니라, 주변 유혹에 한눈팔지 않고 한 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응시입니다.


표(標)는 나무 목(木)에 票(표)가 더해진 글자입니다.

높은 나무 끝에 매달아 두어 거센 풍랑 속에서도, 짙은 안개 속에서도 보이도록 만든 표식입니다.

어디에 서 있든, 얼마나 길을 잃었든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입니다.


두 글자를 합치면, 목표(目標)란 높이 들린 이정표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목표를 뜻하는 '마타라(מַטָּרָה)'는 '주시하다', '지키다'는 어근에서 왔습니다. 멀리 있는 과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파수꾼이 밤을 지새우며 경계하듯 온 신경을 그 방향으로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사도 바울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인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결과를 손에 쥐는 순간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삶의 무게중심을 기울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그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신비는 때로 우리가 그 지점에 이르기 전에 먼저 마침표를 찍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풍랑이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데려가기도 하고요.

저처럼 세운 목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목표는 실패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목표는 도달해야 할 종착지로서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황하는 나를 제자리로 불러오는 나침반으로서, 다시 고개를 들게 하는 이정표로서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3일 만에 잊어버리고 일상에 파묻혔을지라도,

어느 날 문득 다시 눈을 들었을 때 그 이정표가 그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 잠언은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이 말씀은 우리의 계획이 무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방향을 정하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께서 그 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저는 다시 그 이정표를 바라보며 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목표를 잃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정표의 값어치를 이제는 압니다.


오늘 당신의 목표가 희미해졌나요.

괜찮습니다. 다시 고개를 드십시오.

목표는 당신을 정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잊지 않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정표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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