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런사람을 가졌는가?친(親)


얼마 전, 인사동에 계신 한자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요즘 단어의 의미를 한자 파자로 풀어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좋은 시도라며 반겨주시면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친(親)'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직역하면 "부모와 자녀가 친해야 한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와 자식이 서로 '친하다'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것입니다.

친(親)에는 '사랑 친'의 의미도 있으니,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로 확대해서 읽어도 된다고 하시며, 그 글자 안에 어떤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함께 나누어 주셨습니다.




立(설 립) + 木(나무 목) + 見(볼 견)

나무 위에 사람이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



선생님의 설명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중국은 전쟁이 많아 징병되어 고향을 떠난 자녀들이 많았고, 전쟁터로 나간 자식의 안부가 걱정되어 노심초사하던 부모들이 나무 위에 올라 먼 발치를 바라보던 모습에서 이 글자가 유래했다는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글자 하나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친하다'는 말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친함이란 그저 가깝고 편한 사이가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해 가슴이 먼저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청년 시절 밤마다 절 기다려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밤늦게 들어오면 어김없이 불을 켜고 기다리고 계셨던 어머니를 보고 ,

그때 저는 "왜 안 주무세요" 하며 쌀쌀맞게 굴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 기다림이 바로 친(親)이었습니다.

정말 어머니에게 죄송하고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친구란 어떤 관계인가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과연 친구를 그렇게 대하고 있는가.

깊고 애타는 마음으로 친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내 필요가 생길 때만 연락하고, 내 감정이 편할 때만 곁에 두려 한 것은 아닌가.


젊은 시절 함석헌 선생님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 한 편이 크게 울렸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런 사람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친(親)을 묵상하며 다시 읽으니,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 하는 무거운 물음이 됩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그런 사람이 되기에 아직 먼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을 가졌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제 친구가 되어주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연약함을 이해해 주시고,

끝내 십자가의 죽음으로 저를 건지신 예수님을 가졌습니다.


못나고 부끄럽지만,

오늘도 그분과 동행하며 용기를 냅니다.

그분이 먼저 나무 위에 올라 나를 기다려 주셨기에,

저도 누군가를 향해 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리고 그대는, 그런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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