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가 담겨 있는 응원(應援)


말의 무게 앞에서: 함부로 응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의 무게가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젊었을 때는 가족이나 후배들에게 무심코 던졌던 말들이,

이제는 가슴에 남아 깊은 생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가벼운 인사말조차 지켜야 할 약속으로 느껴지고,

"함께 일해보자"거나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 앞에서는 덜컥 겁부터 납니다.


말로만 그칠 이야기라면 애초에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맞다는 뼈저린 깨달음 때문입니다.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실행 계획까지 세웠지만, 아직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 선뜻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해보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나 한 번 믿고 가보자"며 패기인지 객기인지 모를 말을 던졌겠지만, 사업을 하며 그 가벼운 투기가 타인의 삶에 얼마나 큰 책임으로 돌아오는지 배웠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칭찬과 격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칭찬은 분명 필요하지만, 책임질 수 없는 빈말이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가벼운 격려는 도리어 상대에게 공허함만 남길 수 있습니다.


'위로'가 그저 말에 그치지 않고 곁에 머물러 주는 책임감인 것처럼, '응원' 역시 함부로 던질 수 있는 가벼운 단어가 아님을 배웁니다.



히브리어의 숨결: 아마츠(Amats), 무릎을 붙잡아 주는 일


성경에서 진정한 응원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히브리어 '아마츠(אָמַץ)'입니다.

이사야 35장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아마츠)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아마츠는 단순히 "힘내"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위기 앞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사람에게 다가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 떨리는 무릎을 붙들고 단단하게 세워주신다는 물리적이고 실존적인 개입을 뜻합니다.



한자의 은유: 응원(應援), 마음이 울리고 손이 닿는 자리


응원(應援)을 파자해 보면 이 책임감의 무게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응(應)은 지붕(广)에 앉아 우는 새(隹)의 소리에, 그 집 아래 있는 사람의 마음(心)이 깊게 공명하여 대답하는 형상입니다. 상대의 처지에 내 마음이 온전히 닿는 것입니다.


원(援)은 손(扌)을 내밀어 경계를 넘어 구원하고(爰) 끌어올려 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즉, 응원은 상대의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應), 그 마음을 바탕으로 실제로 내 손을 뻗어 돕는(援) 무거운 책임의 언어입니다.



요즘 가끔 누군가가 힘들어 보일 때, 예전 같으면 바로 "응원합니다"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을 잠시 멈춥니다.

아직 그의 떨리는 무릎을 붙잡아 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섣부른 말 대신 뒤에서 묵묵히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그의 무릎을 붙잡아 주실 것이라 믿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편하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상황이 불편합니다.

그 침묵이 냉정하게 느껴질까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응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손을 뻗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다가가는 것.

그 멈춤을 지키는 것이,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응원이라고 생각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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