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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교향곡

헛헛헛 멍뭉미 엉웅이

by 디오게네스

-주의! 메일함이 꽉 차 있습니다.-


그 아래로 조그마한 문구가 보였다. 80만 건. 에이, 어디 고장 났나 보다. 필자는 잘못 본 셈 치고 수업에 집중했다.


'자, 오늘은 루쉰의 문학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혹시 아Q정전을 읽어 본 학생이 있나요?'


필자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런데 필자가 대답하려는 찰나 휴대폰이 마구 진동한 것. 결국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씀드린 뒤 조용히 교실을 나와 유튜브 계정을 확인했다. 네이버 메일 앱은 이미 다운되어서 직접 영상에 접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시간 인기 영상에 그 '재수 교향곡'이 올라와 있었다. 눈을 의심했지만 그 아래 더 충격적인 숫자가 쓰여 있었다.


'조회수 3000만 회.'


'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 이라는데, 그럼 5명 중 3명은 보았다는 건가. 그럼 이미 이 강의실에도 본 사람이 있겠구나. 꿈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다니. 와, 와. 나 이제 뭐 하지. 그래, 수업 듣고 집에 가면 멀쩡해질 거야. 한숨 푹 자면 일어날 수 있겠지.'


셀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만 알람이 자꾸 울려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끄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 이제 수업 시작합시다. 오늘 출근길에 들었던 노래를 다른 학생들에게 잠시 틀어 주고 있어요. 자, PDF 3페이지로 이동해 주세요.'


'저, 교수님.'


눈치 빠른 동기 김도식이 손을 들었다. 그 애의 책생을 보니 그 역시 같은 노래가 틀어져 있었다. 틈만 나면 소스 코드를 뜯는 코딩에 미친 친구였다.


'노래 계정에 인스타 아이디가 연결되어 있는데요, 그, 우리 학교 학생이에요.'


'진짜? 대단하구나. 우리 대학에서 스타 한 명 또 나왔네.'


'네, 그런데요, 이 강의실에 있는 것 같아요. 제... 제가 아는 친구거든요. 제 뒷자리에 앉은 친구.'


도식이 필자를 가리켰다. 순간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이 필자를 쳐다보았던 것.


'진짜로 네가 올린 영상이니? 조회수가 삼천만인데?'


교수님의 질문에 필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학생들은 우르르 필자에게로 몰려들었다. 교수님이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고, 결국 수업은 조기 종료되었다. 필자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화장실로 들어간 뒤 창문으로 몰래 빠져나왔다.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버스, 지하철은 탈 수 없어 택시를 불렀는데, 세상에, 택시 라디오에서 필자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네, 다음 신청곡은 '재수 교향곡', 어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여러분도 한 번 감상해 보시죠.'



'야, 야. 일어났다. 우리 이제 어쩌냐.'


민아는 민재와 마이클과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민아네 집 라디오에서도 '재수 교향곡'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인간들의 전파를 잡아서 청취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것. 일반인에게는 제한되어 있지만, 수색사 이사장인 민아 부모님 덕분에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너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냐. 조회수 삼천만이랜다, 삼천만. 네가 휘갈기고 온 그 악보가.'


'이제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그 인간이 우리를 찾으려 눈에 불을 겨고 뒤질걸.'


'우리, 꼭 숨어 지낼 필요가 있을까? 이제 인간도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알았을 거 아냐. 만약에 그 인간과 거래를 해서 구운 소시지나 치즈 같은 걸 받으면 억만장자 되는 건 금방이지.'


마이클이 말했다.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계정에 연결된 인스타 아이다와 계정을 모두 삭제했다. 영상도 내릴까 생각했지만, 굴러 들어온 기회를 차 버릴 수 있어야지. 문을 여니 온 집안 식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회수 삼천만 축하해! 내가 아는 유튜버는 구독자가 300만인데도 가장 많은 게 800만이더라. 완전 아이돌이구먼.'


'이제야 네 노력이 빛을 보네. 악보 반대로 썼다고 속상해하더니, 경사 났구나?'


'축하한다 아들.'


동생과 엄마, 아빠가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잠시 놀러 온 사촌 동생은 그야말로 광란의 상태여서 필자가 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경사요? 이건 경사 정도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유튜버들도 그 정도는 못해요. 또티님 최고 인기 영상이 2천만인데, 오빠 조회수는 그것보다 높다고요! 그냥, 그냥 아이돌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사촌 동생이 흥분해서 외쳤다. 필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랬다. 이 정도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버들은 거의 없으니까. 아빠와 엄마는 그 자리에서 비싼 음향 기기를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어제까지 방구석에서 악보나 끄적이던 재수생이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악보. 자고 일어나 보니 바뀌어 있었지. 그 글씨체는 분명히 필자의 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필시 누군가가 남긴 것이 분명하다. 도둑일까? 그래도 혹시 몰라, 책상 잘 보이는 곳에 메모지를 붙여 두었다.


'악보를 손 봐주신 분,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방구석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시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동생은 그 메모지를 보고는 필자가 미쳤다고 했다.


'형, 그럴 수 있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었으니까. 이해해.'


그러면서 필자의 등을 톡톡 두드리고 가는 게 아닌가.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제임스가 말했다. 역시 공부만 하던 애라 그런지 좀 고집스럽다. 민재와 민아, 마이클이 그렇게 설득해도 제임스는 오늘 벌어진 일을 믿지 않았다.


'증거를 보여 달란 말이야. 증거를. 그럼 인정해 줄게.'


'얘를 꼭 포함시켜야 되? 어차피 믿지도 않는데.'


'그래도 우리 조원이잖아.'


민재가 말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 함께 그 환풍구로 가는 것이 유일한 길. 환풍구에 이르니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저기 책상 위에 무언가 있는데?'


마이클이 말했다. 민아 가지고 온 수색사용 망원경을 꺼냈다.


'제임스, 네가 먼저 봐.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 했잖아.'


제임스는 잠시 책상을 둘러 보더니 멈추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얘지더니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이었다.


'제임스? 무슨 일 있어? 시체라도 본 거야?'


'저...너네 말이 맞는 것 같아...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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