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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장난감들

by 디오게네스

'네? 저작권 문제요?'


유튜브 본사에서 오전에 연락이 왔다. 조회수 대박을 터뜨렸던 필자의 '재수 교향곡'이 어느 이탈리아 가곡과 음이 너무 유사하다는 것.


'네, 음이 너무 비슷해서 저희도 회의 끝에 내리기로 결정했답니다. 이런 인기 영상을 내리는 경우는 잘 없는데...'


'하지만 그건 제가 쓴 곡인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저희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입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음번엔 파이팅입니다!'


아, 필자의 단꿈이 하루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한 번 뜬 영상은 어디 가지 않는지, 만 명 규모의 구독자를 확보하기는 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이탈리아 가곡을 베낀 건 아니지만 필자가 직접 쓴 노래는 분명 아니었으니까.


지난번 필자가 작곡을 하다 잠이 들 무렵이 새벽 세 시 정도였다. 그렇다면 혹시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남은 심정으로 기다려 보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메모를 본 아이들은 고민했다. 만약 내려간다면 난쟁이들의 존재가 인간들에게 알려질 텐데, 그럼 연구하겠다고 그들이 사는 세계 전체를 헤집어 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앞 래미안아파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또 벌어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회의 끝에 결정했다.


'민재, 네가 내려가라. 아무래도 다 가는 건 무리야.'


마이클이 말했다.


'그러니까. 게다가 저 거인하고 뭔가 관계라도 맺어 본 사람은 너 하나잖아.'


민재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우르르 몰려가면 숨기기도 어렵고 들키기도 쉬웠다. 결국 민재는 여러 도구들을 챙겨 들고 조심스래 환풍구로 발을 내디뎠다.


'야! 죽을라고 그러나? 변신부터 해야지!'


맞다. 그대로 뛰어내렸으면 돌아가신 조상님 구경부터 했을 노릇이었다. 민재는 심혈을 기울여 미니 드론으로 변신했다.


-띠띠딕-


아, 새벽 세 시다. 아직 아무런 조짐도 없다. 역시 필자가 잠결에 쓴 글인 것이 틀림없었다. 너무 열심히 한 까닭에 저도 모르게 명곡을 써 내려갔으리라.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불을 끄고 자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위잉-


어.


-위이 위이잉-


소리가 나는 곳을 급히 쳐다보니 드론 한 대가 날고 있었다! 아주 작은 드론이었는데, 그렇다면 누군가 저기에 펜을 달고 그린 것일까? 그런데 그 드론은 필자 방향으로 날아오는가 싶더니 바로 종이 위에 내렸다.


'안녕?'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이미 다 자는 시간이라 방에는 필자와 드론뿐이었다. 설마, 저 드론이? 순간 식은땀이 나며 오싹해졌다. 저, 저 드론에 마이크가 달린 모양이다.


'저, 누구세요? 문이 잠겨 있는데 어떻게 들어왔죠?'


드론은 대답 대신 하늘에 레이저를 쏘았다. 환풍구였다. 설마 환풍구로 들어온 것인가?


아, 그런데 이거 주거 침입죄 아닌가. 그래도 그 악보가 이 드론의 솜씨라면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악보를 쓰신 분인가요? 이 드론을 조종해서?'


드론은 앞뒤로 프로펠러를 흔들었다. 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누군가 드론을 조종해서 곡을 썼구나! 누구인지는 몰라도 존경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주인이 누군지 무척 궁금해져 드론을 전용 기구에 넣었다.


흠, 이 기구로 말할 것 같으면 방학 때 할 일 없는 동안 만들어 둔 전파 탐지기였다. 기계 안에 무선조종 장치를 올려놓으면 전파가 어디서 오는지 알려 주는 똑똑한 장치다. 동생이 집에 설치한 기어 다니는 드론 '점핑스모'도 이걸로 잡아내었으니 식은 죽 먹기!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기계가 이상했다. 일단 전파를 전혀 잡지 못했고, 그전에 드론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자석으로 붙이는 시스템이라 원래 넣으면 바로 붙는데 이 드론은 애초에 붙지도 않았던 것. '기기를 연결해 주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뜰뿐이었다. 이미 연결했는데?


'혹시 전원이 나갔나?'


하지만 코드는 잘 연결되어 있었다. 헉, 설마. 오싹한 기분이 들어 과학 시간에 썼던 자석을 가지고 왔다. 이게 진짜 드론이라면 자석에 붙을 것인데, 프로펠러가 은빛으로 번쩍거리니 당연히 붙을 것이다. 그런데 붙지 않았다. 아무리 붙여도 나무나 돌처럼 떨어져 나갔다.


STM_Kargu.png


그 드론을 손에 쥐어 보니 따뜻했다. 기계가 달아오른 것이 아닌, 햄스터나 살아 있는 동물을 만졌을 때 나는 느낌과 비슷했던 것이다. 이건 도대체 뭘까. 말로만 들었던 UFO일까? 일단 도망치지 못하게 통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장식장이 수상했다. 전에 못 보던 토미카 한 대가 더 들어 있었다. 아까 방에 들어올 때는 없었는데.


'설마 이것도?'


혹시 나는 역시나였다. 똑같이 따뜻했고, 철로 된 모형인데 자석에 붙지 않았다. 귀신인 걸까?


필자는 그 물체들에게 뜨거운 물 한 컵을 받아 들고 선언했다. 아까 말을 했으니까 분명 우리말은 통할 것이다.


'이놈들아, 귀신이 아니라면 정체를 밝혀라! 아니면 이 뜨거운 물을 부어 버릴 것이다.'


역시. 그것들이 격하게 떨기 시작했다. 토미카 모형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드론은 위아래로 윙윙거리며 움직였다. 평범한 물건들이 아니었다.


'알, 알았어요! 다 불게요. 제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만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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