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속 뚜식 따식 호식이네 치킨?
'엄마, 여기 있던 모형 치웠어요?'
'아니? 둔 적도 없는데?'
밤새 작곡을 하고 일어나 보니 그 모형이 사라져 있었다. 아주 귀한 모델이었는데, 어쩌면 꿈을 꾼 걸 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너무 피곤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보가, 악보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세상에, 난 이런 걸 쓴 적이 없는데.'
필자가 쓴 악보 옆에 종이로 된 악보 하나가 새로 놓여 있었던 것. 분명 어제 쓴 음악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깔끔했다. 음 정리며 박자까지 완벽했는데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모든 음표가 하나하나 장식된 걸로 보아 상당히 공을 들인 게 분명했다.
이상하다. 도대체 이걸 누가 썼을까. 호기심 삼아 프로그램에 입력해 돌려 보았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다니? 최신 프로그램인데?'
평소와 달리 편곡 과정이 한참 걸렸다. 나는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그냥 노래가 아니라 교향곡처럼 여러 악장으로 된 음악이었다. 원판 '재수 교향곡'이 어린 시절, 십 대, 청년 시절의 감정을 녹여냈다면 이 노래는 온전히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 같은 아마추어가 쓴 것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김**, 너 내 악보 건드렸어?'
'무슨 소리야? 나 어제 수학여행 가서 집에 없었잖아.'
'맞다. 그럼 엄마가 건드렸어요?'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네 방엔 들어가지도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 알았다. 어쩌면 천재적인 기질로 잠결에 쓴 게 아닐까? 말도 안 되기는 하지만. 글씨체가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연습용 곡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혼자 듣기 아까워 유튜브 채널에 올리기로 했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다. 공익을 위한 일이다!
민재와 민아, 마이클은 교실로 향했다. 마이클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진짜? 네가 그런 거야? 그 거인 악보를 고쳐 줬다고?'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네 이름이라도 남긴 건 아니지?'
민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민재는 그냥 도와준 것이라며, 악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글쎄, 종족을 뛰어넘은 동정심이랄까. 악보 위에서 자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못 말려.'
그들은 교실로 걸어 들어갔다. 사회 수업이 한창이었다. 늘 지루한 수업이었지만 오늘은 더 지루했다. 바로 제목이 '거인의 이해'였기 때문이다. 과제가 엄청나게 많기로 유명한 수업이지만 성적을 잘 준다기에 하는 수 없이 신청했던 것.
'거인들은 폭력적이고 난폭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린 거인의 아주 좋은 식사거리라는 소리죠. 그들은 수시로 우리 세계를 헤집고 집을 부숩니다. 혹시 예를 들어줄 수 있나요?'
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러자 잘난 척을 좋아하는 제임스가 부리나케 손을 들었다.
'그저께 공원 사태가 아주 훌륭한 예시입니다. 거인이 파리채를 들고 지붕을 때렸는데, 그것 때문에 다친 사람만 50명이 넘습니다.'
'아주 잘 아는군요. 학생, 이름이 뭐죠?'
'제임스입니다.'
'제임스, 10점 추가.'
그렇게 제임스는 또 점수를 땄다. 하지만 민재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만약 그 악보가 진짜라면 거인들도 음악을 사랑한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그건 꼭 시험지처럼 보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걸 넘어 체계적인 학교와 제도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업 내용만 들으면 거인은 맹수나 다름없는데, 실제로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민재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거인도 교양을 가질 가능성이 있나요? 음악이나 시, 미술 같은 거요.'
장 선생님은 재밌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답했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절대로 알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걸 조사하기도 전해 거인이 우리를 잡아먹기 때문이죠.'
제임스는 열심히 고개를 끄떡였다. 맞는 말이다. 민재도 변신술이 아니었다면 잡아 먹힐 뻔했으니까. 이어서 조 배정이 있었다. 학생들의 눈이 일제히 프로젝터로 집중되었다. 한 명, 한 명... 마침내 민재의 차례가 되었다.
'3조. 인간의 위험성 주제입니다. 조원은 송민재, 유민아, 마이클, 그리고... 제임스!'
아, 제임스라니. 민재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민아와 마이클은 반기는 눈치였다. 일단 성적은 좋으니까. 아무튼 3조 아이들은 간단히 모여 톡방을 만들었다. 조별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도 제임스는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열심히 설명했다. 거기에 집중하는 애들은 적었지만.
-띠링-
'안녕하세요.'
'안녕.'
'안녕.'
안녕이라니. 역시 마이클이다.
'우리, 한 인간을 집중해서 조사하는 게 어떨까? 그러면 실제 사례를 잘 보여줄 수 있잖아.'
민재가 말했다. 마이클도 맞장구쳤다.
'그래. 사진도 찍고 녹음도 남기는 거야. 물론 눈치채지 않게 멀리서 말이야.'
'그런데 어떤 인간을 선택할 거야? 땅 아래에 사는 인간들만 수십 명이 넘을 텐데.'
제임스가 말했다. 민재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간단해. 환풍구 아래 인간 하나가 살거든. 거기서 먼지로 변신해 숨어 보는 거야.'
'오케이. 환풍구면 안전하기까지 하지.'
제임스는 흔쾌히 동의했다. 다른 애들도 이의는 없었다.
-띠링-
강의실에 띠링 소리가 울렸다. 아따, 누가 저렇게 문자를 많이 받는 거야.
-띠링-
'아, 거기 진동 좀 부탁해요.'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필자와 학생들은 두리번 거리기만 했다.
-띠링-
'하늘나루 학생 폰 아니에요? 저기 가방에서 울리는데.'
앗, 가만히 보니 필자 가방이 계속 울리고 있다. 공간이 없어서 벽에 기대어 두었는데.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무음 모드로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조용히 휴대폰을 보았다. 어. 잠시만. 웬 알림이 이렇게 왔지. 유튜브. 어.
-안도식 TV님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김삼식짱짱 님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아, 평소에 댓글을 달지도 않던 사람들이 웬일이래. 그런데 좀 이상했다. 댓글 알림이 끝없이 왔던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지.'
얼른 전체 메일함을 확인했다. 어디보자, 송신자, 유튜브. 오케이. 몇 개나 나오나 보자.
-주의! 메일함이 꽉 찼습니다. 오늘 받은 메일 수는 80만 건입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