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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5. 2024

걸어서 국경을 건넜다

'걸어서 국경을 건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평범한 일이지만, 국토의 반만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한때 우리도 신의주와 나진을 통해 중국, 러시아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분단으로 섬나라 아닌 섬나라가 되었고, 우리에게 외국은 배나 비행기로 가는 곳이 되고 말았다.


검문소. Source: Wikipedia


필자가 건넜던 것은 엄밀히 말해 '국경'은 아니다. 홍콩은 중국의 관할이기는 하지만 '특별행정구'로써 별도의 여권과 법률, 제도가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경 같은 분위기다. 본토와 달리 번체자와 광둥어를 사용하고, 자동차 운전석과 도로 방향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 대륙과 반대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위치한 선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검문소 내부에는 작은 선이 있다. 홍콩 입국 사무소와 중국 세관 사이에 있는 선으로, 건물 안에서도 그 선을 경계로 두 지역이 나누어진다. 놀라운 점은 그 선을 사이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는 것이다. 중국 대륙(선전) 방향은 조명이 어둡지만, 홍콩은 밝다. 또 홍콩 쪽에는 잡다한 포스터와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대륙 방향에는 필수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확실히 홍콩 쪽이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 다르다. 중국 방향에는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이지만 홍콩에 들어서면 60, 7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입국 심사를 한다. 옷차림도 조금 남루하고, 물품들도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과학 기술로 성장하는 젊은 선전과 이제 한물 간 홍콩의 대비라고 해야 할까나. 선전은 지하철에서도 노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홍콩은 연령대가 확실히 높다. 버스도, 전철도, 가게 점원도 최소 50은 넘어 보였으니.


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면 둔문(屯門)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거리에는 대륙에서는 잡혀갈(?)만 한 내용의 포스터가 즐비하지만, 제재를 받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 익명이라 누가 붙였지도 알 수 없으니 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홍콩은 '세련됨 속 낡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히 아파트나 건물들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낡았지만, 자잘한 광고나 폰트, 패션은 대륙보다 세련되었다. 대부분 빨갛고 노란 한자가 대부분인 대륙과 달리 홍콩은 영어, 프랑스어도 섞는 등 창의적이고 새롭다.

두문 마을. Source: Wikipedia

화장실이나 시민 의식 등에서도 대륙보다 나은 점이 여럿 보이기도 한다. 구글, 페이스북도 사용 가능하고, 외국인들도 많아 자유로운 분위기다. 이층 버스에 영어로 적힌 HSBC 은행 광고를 보고 있자니 '국제도시'라는 명성을 실감하기도 한다.

대륙의 선전. Source: Wikipedia

그러나 홍콩과 선전을 넘나들수록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홍콩은 쇠퇴하고, 대륙 쪽 선전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거 냉전 시기에는 홍콩이 유일한 중국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했지만, 대륙 전체가 개혁개방을 한 후 홍콩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굳이 홍콩이 아니더라도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수많은 도시들과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표준어도 아닌 광둥어를 쓰는 홍콩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학연수도 베이징, 타이베이로 가지 홍콩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도시 모습에서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선전은 새로 개발되어 녹지가 풍부하고 건물이 깨끗했지만, 홍콩은 나무가 있는 길이 드물었다. 건물도 새로 지을 것이 없고, 인구도 노화되어 젊은이들보다 노인이 많았던 것 같다. 시민 의식도 당장은 앞설지 모르나, 대륙이 무서운 속도로 추월하여 이제 실생활에서는 구별이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정말로 내세울 것이 없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홍콩은 여전히 중요하다. 광동(Canton) 삼각주의 도시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다. 선전은 과학, 광저우는 역사와 문화, 마카오는 도박(...), 동관은 생산을 담당하는 식으로 마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홍콩이 쇠퇴한 게 아니라, 홍콩처럼 잘 사는 도시가 더 많아진 것 같다.


광동(Canton)은 태평양(Pacific)을 마주하는 활기 넘치는 지역이다. 도시들이 저마다의 장점을 품고 서로를 발전시키니까 말이다. 사람들도 열심히 살아간다. 가끔은 서로 갈등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돕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이제 세계와 공존하는 홍콩과 광동을 기대해 본다. 내가 살던 곳이 세상에 도움을 주는 곳이 되면 자랑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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