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중국 생활기
비행기에서 내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더위가 확 밀려 들어왔다.
'열대 지역은 원래 이렇게 더운가?'
우리가 간 광동 선전 시는 중국에서도 거의 최남단에 속하는 지역이라, 공항에 내리자 뾰족한 두리안과 코코넛 열매들이 우리 가족을 반겼다. 이사도 같은 동네에서 했던 나에게 바다를 건너는 이민은 두려웠지만 설레기도 했다. 난 근처 아파트 단지 몇 개가 전부였던 사람이었으니까.
'첫날 가장 기억에 남은 게 뭐예요?'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우리 차로 배정된 '뷰익(Buick)'이었다. 뷰익은 1900년대를 호령했던 미국의 자동차 회사로 거의 파산 직전에 몰렸으나 중국 덕분에 살아났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와 국부 쑨원, 총리 저우언라이가 사용한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우리가 타게 된 모델은 '라크로스'로, 옛 명사들이 탄 '센츄리'의 먼 후손 격 차량이다. 물론 이미 대중화된 차량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본의 아니게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된 셈이니까.
첫날을 함께한 이 차는 중국 생활이 끝나는 날 사고로 트렁크가 찌그러지게 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 우리는 뷰익을 따라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집은 '바다가 보이는 집'이었다. 리조트 형식으로 잘 꾸며진, 대리석 로비와 넓은 수영장도 갖춘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는 상도 받았다고 한다. 회사에서 지원한 주택이라서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훌륭했다. 언제 또 이런 곳에 살아 보겠는가? 방도 넓었고 층고도 높아 소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4인 가족에게 과분한 것 아닌가 싶지만 천만의 말씀. 몇 년 후 코로나가 터지자 도시 전체가 봉쇄되었고, 이런 호화 시설들이 어둠 속 빛이 되었다. 아마 넓은 집이 아니었으면 답답해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낯선 환경에서 처음으로 먹은 음식은 고어(烤魚, 볶고 조린 생선 요리)였다. 적당히 매콤하고 쫄깃한 것이 입맛에 딱 맞았는데,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사천요리였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생선을 뒤집지 않고 처음부터 반으로 쪼개 먹는다. 조금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편리하기도 하다.
마라탕이나 탕후루는 조리법이 간편해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이 생선 요리는 아무래도 양쯔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만든 듯했다. 아무래도 수산물은 쉽게 상하다 보니 한국에서 고어를 다루는 식당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으니 조금 아쉽다. 만약 중국에 가게 된다면 꼭 먹어보길 바란다!
그런데 항상 외식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어디 가나 집에서 간편하게 먹는 요리는 따로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중국에서는 그런 걸 구하기 힘들었다. 짜장면과 짬뽕이 있고, 마파두부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사실 중국은 너무 넓은 탓에 그런 요리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가 살게 된 곳은 광둥 성이라서 주로 북쪽 출신인 한국계 중화요리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신 '차오몐(볶음면)', 이나 '토마토계란탕'같은 음식을 먹게 되었다. 모두 중국 남방에서는 이름난 가정식들이다. 여러 반찬들도 마트에서 팔아서 유달리 입에 맞이 않는 음식은 없었던 것 같다.
아, 하나 있다. 고수는 못 먹겠다. 한입 베어 물면 그 오묘한 맛이 입에 맴돈다.
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국에는 '현지화'된 한국 식품들이 많다. 굳이 한인 마트를 찾지 않아도 동네 가게에서 신라면이나 풀무원의 밀키트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백두산의 물 '백산수'는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KFC, 맥도널드나 다른 체인점들도 한국보다 많다. 월마트, 까르푸까지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오히려 한국에 살 때보다 서구 음식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학교가 개학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선전 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가장 높은 건물인 평안(平安) 빌딩도 가 보고, 국경을 넘어 홍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버스 한 정거장이면 홍콩으로 갈 수 있었으니 운도 좋았던 것이다. 선전 시를 보고 놀란 것은 상상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선전 시는 상당히 깨끗한 도시다. 북쪽의 황사 발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덕에 공기도 좋고, 거리의 모든 버스, 택시, 그리고 스쿠터는 전기였다. 돈 결제 역시 현금으로 하지 않는다. '위챗'이나 '알리페이'같은 스마트폰 어플을 사용하는데 심지어 거지도 QR코드로 구걸하고 있었다 (진짜로 보았다). 도시도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물론 중국은 넓고, 선전 시는 그중 1%도 안되기에 모든 도시들이 이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전 시는 확실히 잘 산다.
인상적인 것은 풍부한 녹지였다. 처음부터 계획도시였던지라 사방에 나무를 심어 놓았던 것이다. 잔디도 한국 것보다 굵어서 스치기만 해도 베일 기세였으니. 단점도 물론 있었다. 날씨가 굉장히 더웠고 벌레도 많았으며, 구글, 페이스북등의 사용이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지금 빌딩 숲 사이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너무 더워서 그런지 청나라 황제 푸이가 바삐 걸어가는 것 같다.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터우를 들고서. 그것 참 맛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