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2020년이 되자 폭풍과도 같았던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기간이 종료된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의 창궐로 일대가 봉 새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아예 불가능했다는 점도 있었다. 버스, 지하철을 탈 때마다 PCR검사를 하고 음식도 오로지 배달로만 가능했다.
학교는 '개학'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굉장히 이상한 형태였다. 일단 세계적으로 항공편이 끊긴지라 대부분의 학생, 선생님이 돌아오지 못했고, 선전 시에 남은 사람들만 규합하여 등교한 것이었다. 당연히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될 리가 없었다. 따라서 수업은 하지 않고 모두 각자 컴퓨터를 들고 온라인 수업을 듣는 PC방과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거기서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만약 거기 있다면)에게 물어보는 방식이었다.
우리 가족의 짐이 일찍 보내졌다. 아마 코로나로 세관 절차가 복잡해져서 그럴 것이다. 짐을 태운 트럭이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이제 우리가 갈 시간이었다. 문제는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선전, 홍콩과 광저우를 비롯한 이름난 공항들이 많은 광둥 성이었으나 기실 코로나로 모두 폐쇄되었다. 떠나는 비행기도, 돌아가는 비행기도 없었던 것이다.
우린 여러 방안을 생각했다. 대만, 몽골이나 러시아를 경유하는 방법 등 다소 번거로운 방법이었지만 그때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이웃 푸젠성 샤먼에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이 하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즉시 출발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사고의 연속이었던 걸까, 선전 시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교통사고가 났다. 뒤에서 차가 들이받은 것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차 트렁크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그건 뭐랄까, 도시가 우리를 쫓아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 돌아가면 비행기를 놓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뒤가 반파된 차를 타고 푸젠성으로 향했다. 예전 같았으면 샨터우(汕頭)에 들려 잠시 쉬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몇 년 전에 놀러 왔던 샤먼의 민심은 흉흉했다. 샤먼 앞 대만 영토인 진먼을 오가는 페리도 모두 중단되었고 공항 출입 단속도 엄격해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도 계속 연착되었다. 한국에 못 갈까 걱정하며 8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정말, 중국 4년이 40년같이 느껴졌다. 험난한 이민 생활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강남의 개포동이었다. 집은 좀 낡았지만 재건축이 예정되어 있었고,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에 산이 있는 것이 한적하니 좋아 보였다. 처음에는 홍콩, 선전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하였다. 조용한 것만큼 편한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