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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09. 2024

내 방에 차린 학교

폭풍 속의 인생대전환

코로나의 발생은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던 '공부'에서 날 해방시켰다. 학교도, 학원도 과외도 모두 멈춰서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환경이 오히려 공부로 이끌었다. '이렇게 놀다 보면 폐인이 되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연락이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 난 내 방에 학교를 차렸다. 그간 공부를 잘하지 않았으니, 이 기회에 온전히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필요한 교과서는 다 가져왔다. 1교시에는 영어, 2교시에는 중국어, 3교시에는 체육. 체육? 아파트를 뛰어다니고 집에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미술 시간에는 어렸을 때 놀던 스케치북 중 빈 페이지를 찾아 그림을 그렸다. 거기에는 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공부는 거기서 시작이 되었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자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과 성취감이 몰려왔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진도도, 숙제도 없으니 내가 이해될 때까지 반복할 수도 있었다. 어려웠던 수학도, 난해했던 문학도 순식간에 '정복'당했다. 내가 스스로 하는 거니까 나름 자부심도 들었다. 강요만이 정답은 아니다. 스스로 답을 찾는 건 어렵지만, 일단 찾는다면 폭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괜히 호랑이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몇 달이 지나자 마침내 끊겼던 국제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다는 거였다.  난 '내 방 속 학교' 덕분에 진도를 완벽하게 따라잡았다. 단 하나의 과제도 밀리지 않고 정각 정시에 제출할 수 있게 되었고 늦잠도 자지 않은 것이다. 그전의 나를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


그전까지 난 열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 받는 애들은 따로 있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대폰과 게임에 몰두하면서 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스스로' 얻은 성과였다. 누가 시키지 않고 받은 상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온몸을 휩쓸었다. 상을 받는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열심히 하면,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를 갖고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그간 못했던 국내 공부에 매달렸다. 날이 밝은 걸 본 날도 많았다. 국제학교에서 강남, 그것도 대치동이 코앞인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내 방 속 학교'는 더 불타올랐다. 한국사도, 문학도 전혀 몰랐지만 몇 달 만에 따라잡게 되었다. 물론 힘들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좋아서 하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진짜다.


'내가 스스로 차린 학교'는 결국 고려대학교에 입학하며 끝을 맺었다. 이제 그 열정이 많이 식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나를 바꾼 경험은 뼛속까지 나를 흔들어 놓았다. 물론 더 못 놀고, 혼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얻은 게 훨씬 많다. 그 폭풍 같은 코로나 시기가 이렇게 인생을 바꾸어 놓았구나.


지금 공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손에 맛난 도토리를 들고서. 녀석, 오늘 포식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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