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이사를 왔지만 생각보다는 적응하기 좋았다. 먹는 것도 입에 맞았고, 학교 분위기는 오히려 개방적이고 편안했다. 거기에 고등학교 진학 시험까지 통과해서 더 어려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착각이었다.
때는 2019년 말, 학교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선전에서 멀리 떨어진 후베이 성에서 병이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스크를 쓴 친구들도 늘어났다. 나는 그 애들이 감기에 걸려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몇몇 선생님들도 마스크를 쓰자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11월은 원래 감기의 계절이 아닌가? 대수롭게 넘어갔지만,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학교 매점의 음식들을 대량 구입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다시는 못 먹게 될 테니까.
우한. Source: Wikipedia
2주 동안의 짧은 방학 동안 우리 가족은 상하이로 여행을 갔다. 첫날 SNS에 게시물을 올렸더니 '위험한 데 가지 말고 빨리 돌아와라'라는 답글이 달렸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정체불명의 질병은 서서히 남하하여 상하이에 이르렀다. 결국 선전으로 가는 항공편이 끊기고 우리는 그대로 호텔에 고립되었다. 여행은 하루 만에 끝나고 이제는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동시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2주 방학이 연장되어 한 달로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은 좋았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한 달이 한 달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 이틀, 삼일... 우리는 이제 호텔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안에만 머물렀다. 이미 통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선전으로 가는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달에는 그것밖에 비행기가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공항이 폐쇄되었으니까. 우리는 밤늦은 시간 택시를 잡아 푸동(浦東) 공항으로 향했다. 벌써 거리에 차가 드물었고 입구에서는 공항 직원들이 꼼꼼하게 체온과 건강을 검사했다. 마치 좀비 바이러스 같지 않은가? 중국 바이두(百度)에서는 연일 확진자 수가 공표되었다.
그렇게 무사히 선전에 돌아온 이후에는 계속 집에서만 지냈다. 정부에서 확진자 지도를 발표했는데, 확진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빨간색이 진했다. 후베이 성과 인근 지역들은 진한 빨간색, 우리가 사는 광둥 성은 아직 흰색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광둥 성도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국제도시인 홍콩과 광저우에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선전도 붉게 물들기 전에 우리는 그 도시를 떠났다. 신문에서는 그 병을 '코로나'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한 달 동안 친척 집에 머물렀다. 원래라면 한창 학교에 다니고 있어야 하지만, 난 방학에나 오던 친적이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학교 시스템이 마비가 되어 수업도 할 수 없었기에 난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 일본에 가서 그대로 고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도 코로나가 퍼진 것이다.
중국으로의 이사가 어린 시절을 끝냈다면, 코로나의 발생은 내가 알던 삶을 끝냈다. 학교에서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밥을 먹던 당연한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집에만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친척 집은 내가 원래 살던 집이었다. 이런 일로 다시 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몇 년 전까지 밤새 놀던 놀이터에 다시 가 보았지만 그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인생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 공항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순식간이 지나쳐 갔다. 손에 맛난 아메리카노를 들고서. 직원님, 오늘 포식하시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