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를 투어 하다
설여사는 30여 년 전 방송통신대를 입학했다. 나와 남편은 그곳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다른 동기들도 각자 짝을 만나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모두 비슷한 시기에 낳아 키우면서 계속 만남을 이어오다 아이들이 다 크고 이젠 부부동반으로 아직도 일 년에 서너 번 모임을 하고 있다.
우리들의 아지트가 된 홍천에서 주말농장을 하는 상호 오빠네에서 1박 2일로 모임을 하거나 여행을 가곤 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6월의 무더운 초여름날씨가 기승을 부리던 주말 오후 3시. 33년 된 방송통신대 동기부부모임 10명은 종로3가역 8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오늘의 일정은 요즘 핫하다는 서순라길을 걷고 이른 저녁으로 익선동에서 고기를 먹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날이 덥다. 전날까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예보가 무색하게 해가 쨍쨍이다. 일찍 도착해서 20분을 길에 서서 기다린 민영언니랑 수정언니는 핫플이고 뭐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를 가자고 한다.
일단 예정했던 서순라길을 가보기로 했다. 종묘를 둘러싼 돌담길의 서순라길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다. 온갖 멋을 내고 나온 젊은이들이 커피숍 안뿐만 아니고 길가 그늘에도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큰길을 한 50보 벗어났을 뿐인데 딴 세상에 온듯하다.
덥다고 성화인 언니들을 위해 첫 번째 나온 예쁜 카페를 들어갔지만 젊은이들로 꽉 찬 카페엔 우리 열 명의 일행이 앉을자리는 없었다. 일단 땡볕에 더웠지만 서순라길을 둘러보자는 남자들의 의견에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계속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어디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찌어찌 걷다 보니 서순라길 끝자락이다.
우리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서순라길골목 안 길을 걸으며 익선동으로 향했다.
서순라길 예쁜 뒷골목을 걷다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호프집으로 우리는 더위를 피해 빨려 들어갔다.
각자 원하는 시원한 음료(?)를 시키고는 한 시간 정도 담소를 나누다 다시 고기를 먹으러 익선동으로 향했다.
익선동 골목에 들어서자 그 많은 고깃집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고기를 먹고 있다.
오늘의 종로 가이드는 서울 토박이 성중오빠다. 종로 구서구석을 잘 알고 있는 성중오빠가 알려준 익선동 고기 맛집에도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노상자리에 자리를 잡으려 하자 갱년기인 민영언니와 수정언니가 이렇게 더운 바깥에서는 고기를 못 구워 먹는다며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마지못해 우리는 종로가이드 성중오빠가 추천한 족발집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수정언니의 남편인 상호오빠가 자기는 족발이 싫고 고기를 구워 먹고 싶다며 완강히 주장한다. 그러자 상균오빠와 민영언니 남편인 귀상오빠도 고기를 먹자고 한다. 남편들의 고집에 우리는 다시 고깃집으로 가서 노상에 앉아 고기를 주문했다. 갈매기살에 생삼겹살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은 커다란 선풍기가 우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불판이 오고 기름이 튀어서 선풍기도 꺼지고 나니 덥기는 더웠다. 갱년기 민영언니는 고기가 다 익기도 전에 우리 테이블에 오더니 고기 더 시키지 말고 이것만 먹고 일어나자며 더워서 못 있겠다고 한다.
우리가 더위와 씨름하며 고기를 굽고 있는데 젊은 남자들이 지나가며 말한다.
"야! 여기 맛집인가 봐. 어르신들이 많으시네."이러며 지나간다.
우리도 30년 전엔 저 젊은이 또래였었는데 어느새 나이들이 먹어 이젠 어르신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종로를 누비던 젊은 이었던 것 같은 우리들이 이젠 갱년기를 겪으며 더워하고 얼굴은 주름지고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되어있다. 인생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45분 만에 고기를 후다닥 구워 먹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진짜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을 가기로 했다.
종로 가이드 성중오빠를 따라 골목을 걷다 보니 피카디리극장이 나왔다.
"야 우리 시험 끝나고 여기 와서 영화 봤었는데 기억나냐?" 성중오빠의 말에
다들 피카디리 극장에서의 추억들을 잠시 꺼내보고 다시 옆골목을 들어서니 그 옛날 싼 가격에 푸짐한 닭튀김과 호프를 먹을 수 있었던 시민호프자리가 보였다.
예전에 동기 언니 오빠들을 따라와 봤던 시민호프인데 지금은 다른 가게로 바뀐 시민호프를 지나치며 예전의 젊은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왔다. 큰길로 나오니 건너편에 국일관이 보인다.
"야! 우리 시험 끝나고 저기 어디 나이트클럽 간 거 기억나냐?"
성중오빠의 말에 설여사는 당연히 기억이 났다.
국일관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종각 쪽으로 걸었다. 조금 걸으니 설여사가 결혼 전 다니던 직장이 있던 빌딩이 보인다. 잠시 혼자만의 추억에 젖어들었다.
걷다 보니 아직도 종로 큰길 옆 작은 골목길엔 포장마차가 정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신기했다. 저 포장마차에 앉아서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오늘은 더위 타는 언니들을 위해 에어컨 빵빵한 곳으로 가야 했다. 횡단보도를 한번 더 건너자 종각 젊음의 거리 골목이 나왔다. 종로에는 골목골목이 다 먹자골목이다.
먹자골목에 들어서자 젤 먼저 민영언니가 시원한 호프집을 찾아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호프집 앞에 물횟집이 보인다. 남자들은 호프집 앞에 서서 물회를 먹자고 의견을 모은다. 물횟집도 오픈가게다. 일단 자리를 잡고 있는 민영언니를 호프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민영언니가 더운 곳 싫다고 불평을 해보지만 이번엔 수정언니가 물회를 먹겠다고 동참을 했다. 벌써 일행은 물횟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다행히 물회집 안쪽엔 에어컨이 달린 단체룸이 있었고 선풍기도 두대나 돌아가니 금세 시원해졌다. 갱년기에 더위를 참지 못하는 민영언니와 수정언니도 만족해한다.
물회 3개를 시키고 또 한잔씩 먹는다. 벌써 3차다.
3차를 먹고 나왔는데도 아직 밖은 환하다. 물횟집에서 나와 이번엔 청계천을 걸어보기로 했다.
먹자골목을 빠져나오니 바로 청계천이다.
들뜬 마음으로 청계천을 내려갔다. 청계천에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청계천은 시원하지 않았고 물냄새도 심했다. 그러나 낭만에 취해 우리는 종로 3가에서 5 가쪽으로 걸었다.
수정언니와 혜진언니가 광장시장을 가보자고 한다.
그래... 오늘은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보자.
광장시장에 도착해서 이번엔 소고기탕탕이와 마약김밥, 녹두빈대떡을 먹으러 갔다. 이번에도 성중오빠가 추천하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식점엔 손님들로 가득 했고 3층까지 올라갔는데 3층에도 손님들이 북적북적하다. 젊은 사람들의 왈짜 지껄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소고기탕탕이와 마약김밥, 녹두전은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4차를 끝으로 종로투어를 마치고 광장시장 앞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무더운 초여름 젊음이 넘치는 종로 한복판에서 만났다. 서순라길과 익선동 고기골목만 다녀오려 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종각 근처와 청계천을 걷고 광장시장까지 종로를 한 바퀴 도는 종로 투어를 하게 되었다.
우리도 아직 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어르신들이 되어있었다. 그 옛날 빛나던 우리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지 갱년기 아줌마들과 백발이 성성한 아저씨들만 남았다.
그래도 오랜만의 종로 나들이는 우리들의 오래된 추억과 그 옛날의 우리들의 젊음을 다시 소환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가슴속엔 그 옛날 그 시절 풋풋했던 우리의 청춘은 언제나 살아있을 것이다.
이젠 가족 같은 33년의 인연인 동기들과의 행복했던 설여사의 종로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