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소음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시간. 창밖으로 어른거리는 불빛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단단한 걸음 같은데, 유독 내 발걸음만 제자리를 맴도는 밤. 몇 번의 계절을 쏟아부은 길 위에서 문득 이정표를 잃어버린 막막함을, 이 마음의 조각들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는 열망이 인다. 해답의 명쾌함이 아닌, 그저 존재의 고요한 수용을 갈망하는 것이다. 형체 없이 흩어지는 마음의 파편들을 판단 없이 담아낼 수 있는 한 사람의 침묵, 그 깊고 너른 품을 구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근원적인 행위가 있다. 서둘러 입을 여는 대신 고요히 귀를 여는 일이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마음은 짙은 안갯속에서 방향을 가늠하고, 아득하게 느껴졌던 거리조차 다시금 가까워진다. 어떤 처방전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곁에서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을 때, 천근만근이던 짐 같은 하루가 거짓말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기적, 경청이 지닌 힘이다.
경청은 기술의 영역이기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그것은 상대를 위해 내 마음 한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를 기꺼이 비워두는 행위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대화 중에 상대의 말 위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성급하게 덧씌운다. 그의 문장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끼어드는 조급함, 몇 마디 단서만으로 모든 것을 안다고 속단하는 오만함은 결국 가장 깊은 진심을 놓치게 만든다.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이는 마음속 빈자리를 열어둔다. 성급한 조언과 판단을 잠시 거두고, 상대가 편히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말보다 듣는 쪽이 커질 때, 두 사람 사이에 상처 입지 않을 작은 영토가 생긴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무엇을 말해야 할까’라는 고민보다 ‘어떻게 들어야 할까’라는 주의가 먼저 다가온다. 말이 이어지는 동안 잠시 흔들리는 시선이나 목소리에 스며든 떨림은, 드러내지 못한 마음의 방향을 비추는 징후가 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길게 자리한 고요는 때로 어떤 말보다 또렷하게 다가오며, 그 침묵을 놓치지 않고 받아낼 때 청자의 태도는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간다. 듣는 행위가 이처럼 깊어질 때, 만남은 대화에서 내면이 이어지는 교류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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