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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M공사일이 Oct 29. 2024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132p, 133p.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선한 존재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잘못은 쉽게 단죄하면서, 자신의 행동에는 여러 이유와 정당성을 부여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불쾌할 때, 우리는 그를 '원래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반면, 자신의 실수나 결점은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포장한다. 이런 방식은 나 자신은 늘 선하고 정당하며,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타인에게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그 믿음은 점점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틀에 가두고, 진실을 직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언젠가 깨닫게 된다. 나는 단순히 좋은 사람이 아니며, 타인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사실은 모두가 복잡한 모순을 품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타인을 쉽게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들을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행동이 납득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의 복잡한 내면과 상황을 탐구하려는 수고를 기피하고, 단순한 낙인을 찍는다. 타인을 '악한 존재'로 정리하면 불편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고, 더 이상 그와의 관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 방어 기제처럼 작동한다.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피로감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이야"라는 편리한 결론에 도달하며, 더 이상 그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진실에 다가갈 기회를 놓치고, 스스로도 점점 고립된 세계에 갇히게 된다.


 자신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내 행동은 단순히 나쁘지 않다고 믿으며, 내가 저지른 잘못은 복잡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한다. 타인의 잘못은 인격의 문제로 간주하면서, 나의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피치 못한 선택의 결과로 치부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는 믿음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그것은 의도된 악의가 아니라 복잡한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에 대한 판단을 유리하게 왜곡하면서, 타인과 달리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회피하게 되고, 타인에게 미친 피해를 가볍게 여긴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다.


 결국 우리는 자신과 타인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선과 악은 단순히 흑백으로 나뉘지 않으며, 누구나 상황에 따라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 타인의 잘못은 단순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복잡한 사정과 내면의 갈등 속에서 나온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믿고 싶더라도,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나쁜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내면과 맥락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쉽게 오해하고, 타인을 단순한 악으로 규정하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타인과 나 자신 모두를 온전히 이해할 기회를 잃게 된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단순한 선악 구도로 정리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복잡성을 왜곡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타인을 단순히 나쁘다고 규정하고, 자신을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갇히게 된다.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진 사람은 타인의 고통과 감정을 외면하게 되고, 점차 인간관계의 균열을 경험한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수록 타인과의 갈등은 더 깊어지고, 그 결과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도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또한, 타인과의 갈등이 반복될수록 점점 내 세계의 좁은 경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나에게만 좋은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타인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너무 늦게야 깨닫는다.


 결국, 우리는 타인과 나 자신 모두 복잡하게 나쁜 면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성찰에 도달할 수 있다. 선과 악은 단순히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 없이 그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우리는 점점 편협한 시야와 왜곡된 자아에 갇히게 될 뿐이다.


 진정한 관계란 서로의 복잡한 면모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이해와 공감의 여지를 찾는 것에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실수에도 쉽게 낙인찍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착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 그것이 진정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나오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타인과 자신에 대한 이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신형철은 우리가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자신을 복잡하게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왜곡된 인식의 문제를 지적하며, 결국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이 글은 그 깨달음의 과정을 확장해, 인간 본성의 모순과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다. 

우리가 타인과 자신을 쉽게 규정하는 이유와 그로 인한 자기중심성의 위험성을 되짚으며, 진정한 관계란 서로의 복잡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이해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노력이다.   




이 글은 개인의 철학적 의견을 담은 짧은 글일 뿐이며, 논쟁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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