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제대로 된 말을 배우고 있다.
인공적인 향에 대한 편견은 마치 두꺼운 성벽 같았다. 향수라는 단어만 들어도 인위적이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친구가 선물한 향수 한 병이 내 고정관념의 성벽을 무너뜨렸다. 처음엔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향수를 살짝 묻혔다. 선물해 준 마음에 대한 존중과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은은한 향기가 내 코를 부드럽게 감쌌다. 놀랍도록 섬세하고 따뜻한 향기가 참 좋았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변화는 찾아온다. 외출할 때, 잠들기 전 향수를 뿌리는 작은 의식은 점차 나만의 일상이 되고 있다. 거부하던 것을 점차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게 되는 과정에서 고정관념의 성벽이 무너지고 있다.
진짜 향기는 몸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내 말에서 피어나는 보이지 않는 향기.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건네는 조언이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나 역시 내가 듣기 싫은 충고를 하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되뇌고 있다.
막내가 집을 어지럽힐 때가 있다. 최대한 좋게 말을 한다. 하지만 막내의 반응은 "엄마는 강호동 같아" 적잖이 놀랐다. "왜 강호동이야" "강호동처럼 1절만 안 하고 2절, 3절까지 하잖아" 실소가 터져 나왔다. 마음은 내가 가진 만큼이 아닌, 상대방이 느끼는 만큼 전해진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구나,
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방 청소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 순간 엄마가 " 방 좀 치워라"라고 말하면 그냥 하기 싫어졌다. 에둘러서 말을 해야 하는데, 듣지 못하다 보니 할 줄도 모른다. 이제야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있다.
마음은 말과 글로 전해진다고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에는 어떤 향기가 묻어날까? 조심스러워진다. 글에 향수를 뿌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말은 향수와 같다. 너무 강하면 역겹고, 약하면 존재감이 없다. 적당한 농도로 살며시 다가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기술이다. 마치 아이가 말을 배우듯, 나도 말을 배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말의 향기를 가다듬는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 진심으로 다가가는 말을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