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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by 서강



관찰에서 시작되는 깨달음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생각하지 마라, 단지 보라." 이 말을 접하는 순간 의아했다. 철학자가 어떻게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철학이란 곧 사유의 영역이 아닌가? 하지만 김종원 작가의 세계철학전집을 필사하며 낭독하는 순간, 그 의미가 녹아듦을 느낀다. 생각한다는 것은 종종 보고자 하는 것에 대한 선입견과 판단을 먼저 내리는 일이다. 판단이 먼저 오면 제대로 볼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단순했다. 먼저 보라. 그리고 그 본 것을 깊이 사색하라.



디테일의 세계


"디테일하다"는 표현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다. 디테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본 것을 말과 글로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마디로, 관찰한 것을 설명하는 능력이다.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생각보다 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생각하지 말고, 보라"의 실천적 의미이다.




눈높이를 맞추는 겸손함


학습지 교육에서 말하는 '눈높이 교육'이 떠오른다. 반려견 신이와 똘이와 함께할 때, 가끔 바닥에 엎드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다. 그럴 때면 좋아서 빙빙 돌고 꼬리가 떨어질 정도로 흔든다. 항상 위에서 내려다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그들의 눈높이로 낮추는 순간, 내 마음에는 겸손함이 깃든다. 아이를 양육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어릴 적 마음을 떠올리면 아이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이 되는 순간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이보다 더 심했으면서 말이다. 잉태의 비밀을 깨닫는다. 잉태는 초경이 시작돼야 가능하다. 조선시대만 해도 10대에 혼사를 치렀다. 그때만 해도 수명이 짧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있지만, 결국 인체의 신비다. 초경을 시작해야 잉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과정을 경험한 후, 잉태가 가능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앎의 과정


안다는 것은 그냥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과정이 있다. 일단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말과 글로 요약해 본다. 요약한 것을 설명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공부도 마찬가지다. 알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공감은 저절로 따라온다.



경험하지 않고도 공감하는 법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물론 직접 경험한 것이 가장 잘 이해되고 공감이 되지만, 경험하지 않은 일에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일단 자세히 보고 관찰하면 말이다. 세계는 사실의 합이지, 사물의 합이 아니라고 김종원 작가는 말한다. 내가 볼 수 있는 사실들의 합이 곧 내 세계다.




자연의 쉼에서 배우는 지혜


3월의 시작, 봄비가 내린다. 적당한 때에 봄비가 내리는 것도 세상의 이치임을 깨닫는다. 비를 내리기 위해 잔뜩 찌푸린 모습 위에, 진통을 겪는 산모의 모습이 겹쳐진다. 매일 아침 광선으로 우리를 맞이하던 해가 오늘은 구름에 가려 잠시 쉼을 취한다. 눈으로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해의 눈높이로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해도 우리나라 연휴에 맞춰 잠시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사람에게 쉼이 필요한 것처럼, 모든 만물에게도 쉼이 필요하다. 쉼은 곧 여유라는 것을 깨닫는다.



제철의 지혜


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도 쉼이다. 제철 음식이 있는 것도 자연의 쉼과 관련이 있다. 청도 한재 미나리가 지금 제철이다. 이른 봄에 잠깐 먹을 수 있는,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풀이지만 그 가치는 높다. 봄에 잠깐 피기 위해 모든 기운을 모으고, 나머지 기간은 푹 쉰다. 자세히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먼저 보고 그다음 사색할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 깊은 철학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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