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창밖에서 속삭이듯 내리는 아침, 나는 오늘도 필사의 시간을 가진다. 대지를 적시는 봄의 전령사처럼, 내 언어에도 촉촉한 단비가 스며들고 있다. 비의 기운을 받아 내 안에서도 새싹이 돋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외침이 빗소리 사이로 들려온다. "너 자신을 향상하라. 그것이 세계를 향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내가 변하면 세상은 변한다." 이 단순한 진리가 이 아침, 필사를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은 결국 '나'라는 단세포로 이루어진 지구촌이다. 때때로 교회에서 시국이 어지러울 때면 지구촌을 위한 통성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의 핵심은 결국 '나'다. 지구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위해 기도해야 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오늘 필사한 내용은 제법 길다. 김종원 작가의 '지성인의 기초 체력을 다지게 돕는 다섯 개의 단어' - 오늘, 생각, 믿음, 진실, 초심.(오생믿진초) 이 다섯 가지 단어가 이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밭에 씨앗처럼 심어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어제 필사한 내용에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지성은 공부에서 온다고 했다. 지식과는 다른, 자기 발전을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이다.
1. 오늘을 살아내는 용기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의 말씀이 떠오른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사다. 때로는 하루살이나 파리 목숨보다도 못할 때가 많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순간에도 미루고 싶은 일들이 내 생각을 지배하려 한다.
일상이란 무엇일까?
초상(초단위), 분상(분단위), 시상(시단위), 주상(주단위), 월상(월단위), 년상(연단위)도 있는데, 왜 일상이라고 하는 것일까? 초, 분, 시는 하루에 포함되며, 한 주, 한 달도 하루가 모여 이루어진다. 결국 가장 중요한것은 오늘이기에 일상이다. 오늘 내게 맡겨진 임무, 책임과 의무다.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모두 해내야 한다. 왜냐하면 내일은 영영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일, 모레... 아직 오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오늘 염려 오늘 족하다"는 성경 구절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내려놓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를 괴롭히던 신경성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기도원으로, 한의원으로, 전국 명의를 찾아다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최고의 처방전은 성경에 있었다.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딱따구리가 쪼듯 아프던 신경성 두통도 사라졌다. 대신 살이 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살은 또 빼면 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주라서 괜찮다.
2. 생각의 방향성
이솝우화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토끼는 속도, 거북이는 방향이다. 토끼는 속도를 믿고 나아간다. 그러다 보니 여유는 있었으나, 여유를 가지는 시간에 사색 대신 잠을 선택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처참했다. 반면 거북이는 자신의 속도를 알기에 방향에 집중했다. 원래 느리기 때문에 여유가 몸에 배어있어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조급해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색도 했다. 자기 페이스를 지킬 줄 알았고, 결승점에 도착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첫아이를 출산한 후, '내 아이는 특별하다', '내 아이는 영재다'라는 착각에 빠져 빠름만을 요구했다. 참으로 미련했다.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이켜보면 너무 미안하다. 바쁨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바쁨을 입에서 멀리 유배 보낸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니 내게 다가오는 소리들이 많다. 새, 나무, 바람, 구름, 산, 강, 바다, 돌, 풀, 꽃... 세상 모든 것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열어두게 된다.
3. 나를 믿는 힘
나는 나의 잠재력을 얼마나 믿는가?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긋고, "나는 못해",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라는 '못해'의 감옥에 나를 가두고 살았다. 그 감옥을 벗어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못하는 것이 아닌, 단지 안 한 것임을.
4. 진실을 알아차리는 눈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종이 한 장 차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알아차리느냐, 알아차리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알아차리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보여야 하는 것들도 보지 못한다. "알아차림"을 위해 여유를 가지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5. 초심으로 돌아가는 여행
첫사랑, 첫아이, 첫 집, 첫 직장 등 처음은 항상 설렌다. 하지만 그 설렘의 유효기간은 너무 짧다. 설레는 마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없을까?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깨어 기도하라"는 성구가 떠오른다. 초신자일 때는 이 성경 구절에 의문이 생겼다. '늘 깨어서 기도하려면 잠은 언제 자?' 표면적인 부분만 본 단면적 해석이 지금 생각해도 귀엽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그때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다. 생각은 시공을 초월한다. 10년 전, 20년 전, 첫사랑, 첫 마음, 첫아이, 첫 집, 첫 직장의 설렘을 떠올릴 수 있다. 그곳으로 시간 여행을 갈 수 있다. 돈도 들지 않는다. 누구나 가능하다. 이 멋진 여행을 즐겨보자.
변화를 위한 실천
오늘, 생각, 믿음, 진실, 초심 - '오생믿진초'를 행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임이 중요하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내 마음도 하얀 도화지가 되어 오생믿진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행동이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는 김종원 작가의 철학 전집을 통해 실천으로 옮기면서 "자기화"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오롯이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독서와 낭독, 필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지금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강과 산, 구름, 하늘의 모습이 정겹다. 작년 이맘때 일본 여행에서 본 보슬비가 내리는 호수의 운무가 떠오른다. 그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다. 사람이 만든 조형물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뇌는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오늘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듯, 나의 언어와 마음에도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