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박복한 년, 내 엄마

건강의 그림자

by 서강


행복한 시간은 오래갈 것 같았지만,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손주들이 점점 자라고, 엄마의 머리카락은 더 희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인 줄 알았던 기력 저하가, 어느 날부터는 조금씩 깊어졌다.


예전엔 새벽같이 일어나 시장에 다녀오던 엄마가, 이젠 아침 해가 중천에 떠도 이불속에 누워 계셨다. 걸음도 느려지고, 부엌에서 오래 서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이 먹으면 다 그렇지”라며 웃어넘기셨지만, 표정엔 알 수 없는 그늘이 스쳤다. 병원 진료를 받고 나서야 알았다. 관절과 심장이 예전 같지 않다고. 그 무렵부터 엄마는 자주 병원에 들락거렸고,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여도 상 위 음식의 절반은 사다 올려놓게 됐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은 여전히 좋았지만, 나도, 오빠도, 동생도 알았다. 엄마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예전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가슴 한구석을 조용히 서늘하게 만들었다.


결국, 엄마는 오빠 집 근처 요양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엔 “나를 요양원에 맡기다니” 하며 서운해하셨지만, 곧 익숙해지셨다. 같은 또래의 어르신들과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고, 햇볕 좋은 날에는 마당 산책도 하셨다.


나는 2주일에 한 번, 엄마를 만나러 갔다. 손을 잡아드리면,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지” 하시며 늘 내 손등을 토닥이셨다. 오빠는 가까이에서 자주 들여다보았다. 간식거리나 과일을 사다 드리고,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의 건강 상태를 챙겼다.


요양원 창가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밖을 바라보던 엄마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람이 살짝 불면, 흰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제 엄마는 인생의 가장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박복한 년, 내 엄마의 삶은 수많은 굴곡과 시련, 그리고 짧지만 빛나던 평화를 지나, 창가의 햇살 속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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