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
수술까지는 보름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수술 전까지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남편의 컨디션을 관리해서 수술의 좋은 결과를 이끌러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어야 했는데…
나에 이 책임감이 남편에게는 숨을 못 쉬게 하는 스트레스 역할을 했고, 보름 내내 우리 부부는 부딪치고 쉼 없이 싸웠다.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 넣지 말라고. 전자파가 고환에 안 좋다고 하자나.”
“캔커피 좀 그만 먹어. 그런 것들만 먹으니…. 관리를 하라고.”
“운동 좀 하라고. 티브이만 보고 있지 말고.”
남편에게 하는 말 하나하나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는 행동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원망하지 않았다며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남성난임 정보를 얻어던 카페 들어가서 종종 글을 읽고 한다. 9년 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에 글을 읽다 보면, 참 현명한 아내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참 못난 인간이구나.’ ‘나는 나쁜 와이프였구나.’ 하는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난 정말 남편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 거 같다. 정말 간신히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 떨어져라, 떨어져라 계속 밀고 있었다.
“난 우리 집에도 말하고 싶고, 시댁에다가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굳이 그래야 할까? 수술하고 나서 말해도 되잖아?”
“싫어.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잖아. 우리 부모는 내 수술 때문에 임신이 안 되는 줄 알고 죄인처럼 생각하고, 시댁은 내가 살이 너무 쪄서, 내가 나를 관리를 안 해서 안 생기다고 생각하잖아. 싫다고 얘기하라고. “
시댁 쪽 남편 사촌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다. 남편 여동생은 우리 부부보다 일 년 먼저 결혼을 했고, 임신해 딸이 한 명이었고, 주변에서 임신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시부모님을 만나거나, 전화통화 할 때마다 누구네는 아이 가졌다더라, 너 요새 관리는 하고 있니? 등등 노골적으로 임신에 대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시부모님들이 내게 하시는 모든 말들이 곱게는 들리지 않는 시기였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네가 오해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 난 아직 말씀드리기 힘들어.”
“왜? 왜? 나만 힘들어야 하는데 아기를 못 낳수도 있는데, 왜 그런 시선까지 내가 받아야 하는데…. 난 싫다고.”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일 년 동안 아이를 안 갖고 지내기로 한 부분에 대해 양쪽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했었다. 남편에 뜻이었다. 굳이 이런 부분까지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고, 나도 동의는 했지만, 일 년 동안 아이를 기다리시는 양쪽 부모님들에 시선에서는 자유롭지는 못했다.
“말을 왜 그렇게 해. 아직 결과도 모르는데. 네가 그렇게 안 해도 지금 나도 충분히 힘들어. “
“힘들어? 힘들다고? 오빠가 모가? 어머님이 매주 전화해서 꼬치꼬치 매번 똑같은 질문 하시면서 얼마나 내 숨통을 막히게 하는지 알아? 도대체 오빠가 하는 게 모고? 모가 힘들다는 거야???? “
“진짜 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그만해라. 그만하자. “
“뭘 그만해? 그만하자고 하면 해결이 되는 거야? 오빠는 아기도 안 좋아하자!! 내가 얼마나 아기를 좋아하는지 알면서! 내가 얼마나 아기를 기다리는지 알면서!! “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남편이 소리쳤다. 터졌다. 참고 있던 남편이 드디어 터진 거다. 많이 참았다. 그날의 싸움을 회상하는 지금의 나조차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끌어내리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전 가족계획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되면, 아이 때문에 본인 인생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남편은 종종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일이 터지고 나서 남편은 아이가 없어도 되는 거 같았다. 아이 없는 결혼생활이 괜찮은 거 같았다.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 혼자만 간절하고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또한 결혼초 발병된 착한 며느리병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나는 시부모님과의 마찰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 원망과 화도 모두 남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남편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며 집을 나갔고, 나도 남편이 집에서 나가자마자 여행 가방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