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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첫 가출.

반응이 너무 달라.

by 김부부

“본인 심정은, 본인이 제일 힘들어. “


난 남편이 집을 나가자마자. 큰 캐리어에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갔다.


신혼집과 친정집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여행가방을 끌며 친정집에 가는 내내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보든 말든 가는 내내 펑펑 울었다.


“왜 울어? 이 가방은 모야?”


집에 있던 엄마와 언니는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나를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 집 나왔어.”


“울지 말고 찬찬히 이야기해 봐.”


“엄마 나 어떡해.”


엄마 붙잡고 서러움에 한동안 목놓아 펑펑 울었다.


한참 울고 난 후에 난 말하지 말었어야 하는 이야기들을 해버렸다. 이때는 오로지 내 힘듬밖에는 몰랐던 거 같다. 알아주기 바랐다.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내 부모 가슴에 목 박는 짓인지도 모르고.


“우리 아기 못 가질 수도 있대.”


놀라서 표정이 굳어버린 엄마와 언니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수술을 잡은 것까지 다 이야기해 버렸다.


“그래서 사위는 괜찮아? “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엄마의 첫마디 말은 나보다는 남편을 먼저 걱정한 말이었다.


“왜 남편만 걱정해?”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이때는 엄마의 반응이 너무 서운해 더 큰 소리 내 울어버렸다.


딸 부부에게 생긴 일에 놀란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도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진정시키시고 타이르시기 시작하셨다.


그날 엄마가 한 말을 난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자연스레 아기 생기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세상사 살다 보면, 마음처럼 안 될 때도 있어. 어떡하겠어.... 네가 좋아, 네가 선택한 사람인데.... 사위 심정은 지금 오죽하겠어. 마음이..... 집에 돌아가. 가서 잘 얘기하고 잘풀어. 그리고 마음 편히 가져. 다 방법이 있을 거야. “


(우리 부모님은 내가 오래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셨다. 내 결혼 발표와 함께 남편에 존재를 알게 되셨다. 모든 부모마음이 그러하듯 여러 이유로 인해 약간에 결혼반대가 있으셨다. 하지만 내가 오래 만났고 내가 더 좋아한다 하니 받아들인 결혼이었다. )


엄마 이야기를 다 듣은 나는 나보다 남편 마음을 헤아려 주는 엄마가 서운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집에서 쫓겨나듯 결혼 후 나의 첫 가출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고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언니가 여행가방을 대신 끌며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 외출 후 귀가하신 아빠는 엄마에게 모든 이야기를전해 듣고 한참을 말없이 베란다에서 하늘만 바라보셨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집에 들어와 있었다. 큰 여행가방과 같이 돌아온 나를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남편에게 나는 나에 첫 가출과 함께 우리 집에는 이 모든 사실을 말을 했으며, 우리 집은 현재 이런 상태이며 우리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본인도 내일 시댁에 가서 이야기하고 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남편은 시댁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나는 시댁에 반응을 물어보았다.


“뭐라셔?”


“인정을 안 하시는 거 같아. 단어도 생소하고 그냥 크게 안 받아들이시는 거 같아.”


“아니? 몰 안 받아들이셔? 충분히 설명했어? “


남편에게 질문을 했지만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싫은 남편은 대화를 일방적으로 종료해 버렸다.


“네. 어머니?”


다음날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아들이 집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는데 아버님 하고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며느리 네가 다시 이야기 좀 해봐라. “


전날 아들에게 질문하시고 대화를 했으면 되었던 일을 본인 아들이 힘들어하며 이야기하는 게 속상하셔서 아들은 집에 돌려보내고 나한테 다시 전화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신랑한테 들은 이야기 그대로 이세요. 오빠가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정자가 없어서 임신이 안되고 있고, 평생 안될 수도 있고, 아이를 원하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해도 정자가 없을 확률이 높지만 수술해 보려고요. “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왜? 그런데?”


였다.


“저도 모르져. 어머니?”


“그럼 어떡하니?”


당신 아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인정하기 힘들어하시는 것을 나도 이해는 하지만... 며느리인 나 역시도 힘듬은 똑같은 것을..... 시어머니는 나에게 계속 이해 못 했다는 듯한 말투로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기 시작하셨다.


“수술하기로 했잖아요.”


“수술하면 해결되는 거니?”


“아니요. 수술해도 정자가 없을 확률이 높아요.”


“그럼 그 수술을 왜 하는 거니? “


30분 넘게 스무고개 같은 대화를 마치며 어머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얼굴이 너무 안 좋더라. 그래서 아들한테는 이것저것 질문을 못하겠어. 그러니깐 네가 아들 좀 신경 써서, 잘 달래주고 우리한테도 며느리 네가 수술 전까지 계속 전화해서 상황 좀 설명해 줘. 아들 시키지 말고. “


이날부터 나는 수술 외에 더 커다란 스트레스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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